'고비 넘어 또 고비' 대미 투자 합의 타결 힘겹다…美의 '반도체' 언급도 주목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최종 타결' 도달 못 해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2.4 ⓒ 뉴스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서재준 한상희 기자 = 한국과 미국의 대미 투자 1차 프로젝트 합의가 막판 고비를 쉽게 넘지 못하고 있다. 통상·외교라인의 고위급 채널이 연쇄적으로 움직였음에도 최종 타결에 이르지 못하면서 합의가 추석 연휴 이후인 이달 말로 밀릴 가능성도 20일 제기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과 만났다.

이번 한미 외교장관회담의 쟁점은 3500억 달러(약 479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의 첫 사업 합의와,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에 있어 출구를 찾는 것이었다. 7개월 만에 대면한 두 장관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았지만 두 사안 모두 결론을 내지 못했다.

조현 장관은 회담 직후 이뤄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양국 간 진행 중인 대미 투자 관련 협의가 '좋은 결실'을 맺도록 노력해 나가자고 했고, 이 과정에서 루비오 장관에게도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며 "루비오 장관도 협의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국무부 차원에서도 노력하겠다고 답했다"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지난 17일 출국길에도 대미 투자 문제와 관련해 한미 간 이견은 없으며 '국내 절차적 문제'로 합의가 늦어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장관이 특파원 간담회에서도 '좋은 결실'을 언급하고 미국 측도 협의의 마무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큰 틀에서 대미 투자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서 진행 중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거의 합의가 됐다고 하는데, 제가 내용을 보니 동의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이 좀 있어 다시 얘기를 또 하는 중"이라며 한미가 각자의 '최대한의 이익'을 위해 막판 진통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간 한미는 약 223억 달러(약 30조 원) 규모의 텍사스주 엔시날 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대미 투자의 첫 사업으로 진행하고, 이후 한국이 미국 내 8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알래스카 LNG 사업에도 투자하는 후속 사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원전과 알래스카 LNG 사업 관련 세부 협의가 길어지면서 당초 정부가 목표로 한 일정을 넘겨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美, 한미 현안 아닌 '반도체' 문제 언급…'추가 투자' 요구에 합의 지연?

그런데 미국 국무부가 밝힌 보도자료 내용을 보면, 한미 간 반도체 문제가 새로운 변수로 제기됐을 가능성도 있다.

국무부는 보도자료에서 "두 장관이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전략 분야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했다"라며 반도체 문제를 이번 회담의 결과 중 가장 먼저 언급했다.

통상 외교적 소통 이후 양국은 각자의 관심사를 먼저 내세워 보도자료를 내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대미 투자 협상 과정에서 다른 사안이 아닌 반도체 문제에 대한 요구 조건을 제기하고 한국의 수락을 압박하면서 논의가 길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산 반도체에 대한 표적 관세 부과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반도체의 미국 내 생산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밝힌 뒤엔 한국에 그 역량을 미국에 투입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약 800조 원의 투자가 예정된 호남 클러스터 조성과 미국에서의 사업성 문제로 인해 미국에 대한 반도체 관련 추가 투자는 정부와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우리 기업의 입장에선 어려운 일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총 370억 달러(약 57조 원)를 투입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38억 7000만 달러(약 6조 원)를 투입해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미국은 이 외에 추가 투자를 요구하는 셈이다.

이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기업의 의견을 존중해 가며 대한민국의 국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결론을 만들어갈 것"이라면서도 "여전히 논쟁거리"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논쟁거리'라는 말은 미국과 반도체 사업 관련 실무적 차원의 협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자체를 고민 중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현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9.18 ⓒ 뉴스1 허경 기자

정부와 우리 기업은 미국에 반도체 사업 투자를 늘리더라도 이를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연계하진 않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근 일본이 대미 투자 사업 차원에서 약 2~3조엔 규모의 반도체 공장 건설에 합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한국이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는 듯하다.

대미 투자 1차 프로젝트 합의는 한미 간 다른 통상 및 외교·안보 현안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시급하게 타결을 지어야 하는 사안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무역이나 통상 분야, 투자 등의 문제가 안보협의(핵추진잠수함 도입+원자력 협정 개정 논의)의 진전을 더디게 만든 것은 사실"이라며 "대미 투자 협상이 마지막 단계에 왔기 때문에 이것이 선결되면 안보협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믿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난제인 대미 반도체 투자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면, 대미 투자 협상은 물론 다른 안보 현안의 논의 재개도 예상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미국도 한국의 약점을 잘 알고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것일 수도 있다.

대미 투자 문제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및 조현 장관의 방미라는 한미의 연쇄 고위급 소통으로도 최종 합의라는 관문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한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전격 대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미 정상의 만남이 이뤄진다면 기대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우려되는 대목도 적지 않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성향과, 그가 최근 한국의 대미 투자 지연에 대해 잦은 불만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양자 대면이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예상과, '톱 다운'식 협상을 선호하고 11월 중간선거(상·하원 선거)를 앞두고 '성과'가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난제의 출구를 여는 결단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seojiba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