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여부 침묵 속 검토는 '착착'…軍, 호르무즈 현지조사 등 진행
軍 조사단, UAE 미군기지서 작전 여건 점검…"파병 전제는 아냐"
美 주도 MFC 혹은 영·프 주도 다국적 임무 참여 여부 아직 검토 중
-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에 대해 연일 "결정된 바 없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군 현지조사단을 아랍에미리트(UAE)에 파견하는 등 실제 기여 가능성에 대비한 실무 검토는 물밑에서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10일 군 당국과 외신 등에 따르면 국방부가 최근 UAE에 파견한 현지 조사단은 현지 정세와 안전 상황, 항만과 공항 등 우리 군 전력의 활동 여건을 파악하고 있다. UAE에는 미군의 중동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인 아부다비 알다프라 공군기지가 있고, 두바이 제벨알리항에는 미 해군 함정이 기항한다.
로이터통신도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 주변의 안보 상황을 평가하기 위해 UAE에 조사단을 보냈다고 전했다. 다만 한국 정부가 군사적 기여를 포함한 여러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을 뿐 군 전력 파견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역시 현지 조사가 곧 파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조사단 규모와 귀국 일정 등에 대한 질문에 "파병을 전제로 한 조사단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설명드렸다"라며 "자세한 규모나 출입국 일정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설명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청와대도 같은 입장이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국익과 국민 공감대에 기반한 해법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라며 군 병력이나 장비를 보내는 방식 이외에도 기술적 지원을 포함한 여러 기여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전날에도 성 수석은 정부가 최종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며 실무 단계에서 논의 중인 내용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실제 결정된 것보다 파병 논의가 앞서가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종 결정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의 논의를 거쳐 대통령이 내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군 안팎에서는 파병 결정이 내려질 경우에 대비한 여러 선택지가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P-8A 해상초계기를 비롯해 해군 특수전전단 폭발물처리반(EOD), 군수지원함 등이 파병 후보 전력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모두 '비전투 전력'에 해당한다.
특히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는 지난 7월 말부터 호르무즈 해협 기여 문제를 놓고 양자 협의를 진행했고, 미측이 기뢰 제거와 정찰, 후방지원 등 분야별로 한국의 기여를 희망하는 전력을 제시했다. 구축함과 같은 직접적인 전투 전력보다는 정찰·기뢰대응·군수지원 등 비전투 임무에 '한국의 기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파병이 결정될 경우 미국과의 양자 협력 방식으로 파병할지, 다른 '국제 협력체'를 꾸릴지 여부도 쟁점이다. 미국은 국무부와 중부사령부를 중심으로 '해양자유구상'(MFC·Maritime Freedom Construct)을 추진해 왔다. MFC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항하는 선박에 실시간 정보와 안전 지침을 제공하고 안전한 항행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조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은 지난 4월부터 각국에 참여를 요청해 왔다.
우리 정부도 MFC와 연계한 군사적 기여 방안을 우선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선택지는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다국적 군사임무다. 영국과 프랑스는 지난 5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민간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지원하고 상선 보호와 기뢰 제거 등을 수행하는 '독립적이고 엄격히 방어적인' 다국적 군사임무 추진 계획을 공식화했다. 한국도 당시 30여개국과 함께 이 임무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표명했다.
영국은 자율형 기뢰탐색 장비와 대드론체계, 타이푼 전투기, 구축함 HMS 드래곤 등을 향후 다국적 임무에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지난 7월엔 오만과 안전한 항행 여건을 마련하면서 상황이 허용되면 다국적 군사임무를 전개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 주도의 MFC와 영·프 주도 임무가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앞서 미국 측 구상이 영·프의 다국적 임무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상호 보완적 성격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미국과의 양자 협력, MFC 참여, 영·프 주도 다국적 임무 가운데 하나를 택하기보다는 여러 틀을 연계해 제한적인 기여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 8일 정상회담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와 해상안보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 역시 파병 논의가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기여 방안을 논의한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파병을 결정할 경우 거쳐야 할 국내적 절차를 위한 준비도 실무 차원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 병력이나 전력을 해외에 새롭게 파견하려면 헌법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의 파병이 아닌 현재 아덴만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의 임무를 호르무즈 기여로 완전히 전환할 경우에도 기존 국회 파병동의안에 명시된 파병의 목적이 달라지는 만큼 새롭게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이란과의 적절한 외교적 소통도 필수다. 이란 외교부는 한국군이 걸프 지역에 군사적으로 참여할 경우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에 가담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경고성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정부는 향후 현지 조사 결과와 중동 정세, 미국·유럽 국가들과의 협의, 국내 여론 등을 종합한 뒤 실제 군 전력 파견 여부와 방식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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