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韓 자산 기다려" vs 이란 "파병=참전"…진퇴양난 호르무즈 외교

대미 투자 난항, 파병 검토로 '달래기'?…美는 '파병 관철' 기조
이란도 반발 조짐…"한미 '정상 외교' 필요한 시점"

3D 프린터로 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형상 뒤로 호르무즈 해협 지도가 보이고 있다. 2026.01.09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미국으로부터 파병 요구를 받는 한국 외교가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우려가 6일 제기된다. 미국은 한국의 '파병 검토' 보도가 나오자 즉각 "한국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파병을 독촉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란은 "한국이 파병한다면 곧 참전"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하는 으름장을 놨다.

이재명 대통령은 호르무즈 상황의 해소를 위한 "실질적 기여"의 필요성을 거론하면서도, "고민이 깊다"며 정부가 이 문제를 '고난도의 외교'로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美 "에너지 이해당사국이 관여해라" 종전까지 압박은 지속된다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4일(현지시간) '이란 파병과 관련해 한국과 논의가 진행 중이냐'는 뉴스1의 질의에 "한국은 중동 석유의 가장 큰 수입국 중 하나"라며 "우리는 한국이 이 지역에 자산을 배치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 행정부의 입장은 미국으로부터 '안보 혜택'을 받으면서 중동 지역에 에너지 등 경제적 이익이 걸린 주요 우방이라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을 위해 미국을 도와 '적극적인 역할 수행'에 나서야 한다는 그간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호르무즈 파병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뒤 나온 이 같은 입장은, 한국의 '빠른 결단'을 촉구하는 측면도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는 개전 초기인 지난 3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응해 한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7개국에 군함 파견을 요청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동참도 요구했다. 하지만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과 호주 등은 파병 불가 입장을 공식화했고, 한국은 구체적으로 입장을 내지 않으면서 상황 개입을 피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하지 않는다"면서 "유럽, 한국,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해협을 필요로 하는 만큼 그들이 관여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석유 등 중동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동맹국들이 미국을 돕지 않은 상황을 '비합리적 선택'으로 규정하며 이해당사자의 행동을 촉구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8.22. ⓒ 로이터=뉴스1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에도 폭스뉴스에 출연해 "우리는 나토와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쓰고 있지만,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한국이 예시"라고 직접 한국을 겨냥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압박은 최근 이란과 미국이 다시 무력 충돌로 갈등하면서 더욱 거세지는 듯하다. 최근 정부 내에서 실제 파병 시 국회의 동의를 얻기 위한 '파병 동의안'의 초안까지 이미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미국 측의 파병 요구가 실질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 미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한국의 대미 투자 지연을 모든 한미 현안과 연계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투자가 늦어진다면서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한 협의엔 미온적으로 임하고, 호르무즈 파병 압박은 강화하는 식이다. 미국이 호르무즈 파병 사안을 한국에 대한 확실한 외교적 카드로 삼았다는 것은, 관련한 압박을 중동 전쟁의 종전 때까지 이어갈 가능성을 키우는 점이기도 하다.

이란은 한국의 파병설이 불거지자 실제 파병이 이뤄진다면 이를 '참전'으로 규정하겠다며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

이란 반관영 메흐르통신에 따르면 이란의 한 고위 정치·안보 당국자는 4일(현지시간) 레바논의 친이란 성향 매체 '알마야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이 미군의 불법 작전에 협력하도록 강요하는 워싱턴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테헤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에 반하는 한국의 어떠한 행위도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에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라고 위협했다.

중동 지역 미군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 로고와 호르무즈 해협 지도 일러스트. 2026.04.15 ⓒ 로이터=뉴스1
'파병' 안 해도 상황 풀리는 줄 알았는데…"정세 및 美 의지 판단 부족했다" 지적도

중동 전쟁 초기 한국의 파병 가능성은 극히 작았다. 정부는 전쟁 초기엔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정 체결을 전제로 영국, 프랑스가 주도하고 주도 40여 개국이 참여하는 다자협의체(호르무즈 해협 항행 자유 이니셔티브)에 동참하는 방안을 우선순위로 검토해 왔다. 그러면서 향후 중동 재건사업 참여 등을 고려해 이란과 긴밀한 외교적 소통도 유지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란 측 세력의 'HMM나무'호 공격 사건으로 이란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악화하자,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프로젝트 프리덤' 제안에 응할 가능성을 거론하며 노선을 일부 변화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실제 병력 파견을 추진하기보다는, 나무호 사건에 대한 이란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노린 외교적 노림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종전으로 가는 듯한 중동 상황이 악화하고, 미국이 빠른 진행을 원했던 대미 투자 문제가 꼬이면서 파병을 실제로 검토해야 하는, 정부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 현실화하는 듯한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엔 한국의 중동 파병 '거절'을 이유로 대북 협상을 혼자서 추진하겠다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면서 다소 감정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시민사회 초청 간담회에서 호르무즈 파병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파병 얘기를 하기는 어렵다"며 "대외적으로 (파병) 얘기를 안 하면 좋겠다. 군사적으로 예민하다. 고민이 깊다"라고 언급하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과 별개의 노선을 걷고자 했던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의 동향 변화도 정부의 고민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호르무즈 파병에 소극적이었던 유럽 국가들은 중동 상황이 다시 악화한 후엔 '휴전 후 파병' 입장에서 선회해 우선 아라비아반도 일대에 전력을 보내는 방식으로 '미국에 척을 지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영국은 구축함과 기뢰전 모함 등은 지난 6월 독일 해군 전력과 함께 이미 중동 해역 일대에 투입됐다. 프랑스 역시 지난 5월 샤를 드골 항공모함 전단을 아라비아해 일대로 출동시켰다.

"파병 외통수 걸린 韓"…대미 외교 점검, 정상외교로 대안 모색해야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4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 방한 환영 오찬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2026.4.3 ⓒ 뉴스1 허경 기자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 재개가 대미 투자 지연과 겹치면서 미국을 달랠 수 있는 카드가 사실상 '파병' 하나만 남았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중동 정세 판단과 대미 투자 협상 등과 관련해 한국의 경제·외교·안보라인이 긴밀한 소통을 하지 못한 결과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미 투자 이행이 쉽지 않고, 그간 미국의 참전 요구에 '공조한다, 지지한다'는 수준의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던 상황에서 한국이 마치 '외통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처럼 보이기도 한다"라며 "파병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 미국에 성의를 보여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외교 채널에서 흐름 파악과 소통에 실패한 것이라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윤상용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지난달 한미 연합연습의 갑작스러운 축소, 지난 7월 강경화 주미대사의 예정에 없던 귀국 등 미국과 외교적 소통이 좋지 않은듯한 신호가 이어졌다"라며 "파병 카드는 이러한 적신호들에서 나온 궁여지책과 같다"라고 해석했다.

파병안을 한미의 협상 테이블 아래로 끌어 내리는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정상 외교'가 거론된다. 당장 이달 말 유엔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때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짧은 기간 안에 두 번의 정상 간 대면 소통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게 꼭 필요한 카드라는 제언이다.

양욱 위원은 "꼭 완벽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두 대통령이 직접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서로의 대안을 직접 만나서 듣고 오해라도 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만에 하나 파병이 현실화한다면 '미국을 돕는다'가 아닌, '국제사회와 연대한다'는 명분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윤상용 교수는 "미국과 연대한다는 모습보다 호르무즈 통행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함께 기여한다는 명분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전투 병력이 아닌 지원 인력으로 국제 작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란의 심기도 살펴 우리 군의 피해 발생 확률도 낮추는 등 이란과의 직접 마찰을 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부터 3박 5일 일정으로 프랑스를 국빈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그간 호르무즈에서의 자유항행을 위한 영국과 프랑스 중심의 다자협의체 관련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프랑스는 호르무즈 통항을 위한 국제 연대에 가장 먼저 적극 움직였던 나라"라며 "지난번 정상회담에도 논의 진행됐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