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압박 강화에 '호르무즈 파병' 검토 진전…향후 절차와 변수는?
정부, 호르무즈 파병 시나리오 구체화…국회 동의안도 마련한 듯
대미 투자 1차 프로젝트 성사되면 파병 불필요할 수도
- 김예원 기자,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한상희 기자 = 정부가 미국이 요구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기여' 방안을 '군사적 기여'에 초점을 맞춰 관련 검토를 구체화하고 있다. 사실상의 파병을 염두에 둔 것으로, 어떤 자산 혹은 병력을 보내는 것이 합리적이며 미국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4일 전해졌다.
일각에선 정부가 더 이상 미국의 요구를 피할 수 없을 때가 되면 빠른 절차 이행을 위해 국회에 제출할 '파병 동의안'의 초안도 이미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지연을 이유로 미국이 대부분의 한미 현안 논의에 '어깃장'을 놓는 듯한 모습을 감안한 조치로 해석된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파병으로 얻을 수 있는 국익이 크지 않았는데, 이제 파병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호르무즈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하려면 한반도 대비태세를 고려해야 하며, 이에 대해 여러 검토를 하고 있다"면서 "정해진 것은 없으며, 국내법적인 절차 등에 대해서도 고려는 하고 있다"라고 현재 이 사안에 대응하는 정부의 기조를 설명했다.
'한반도 대비태세'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실질적인 전투 병력 파견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다만 청와대는 지난 5월부터 호르무즈 해협 사안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군의 대비태세와 국내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상황 설명과 입장이 4개월 전과 다르게 해석되는 이유는, 현재 한미 간 대부분의 주요 현안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계속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대화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 사안에 있어 미국을 도와달라는 자신의 요청을 거절(no thanks)했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8월 30일엔 "한국 같은 나라를 돕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쓰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우릴 도와야 할 상황에선 '아뇨, 괜찮습니다'고 한다"라며 "이 일을 기억해 둘 것"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미국은 또 지난 6월 개시한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한 논의에 임하지 않고 있다. 당초 1월에 시작하려던 논의가 반년가량 미뤄진 것인데도, 다시 무성의한 모습을 보이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3500억 달러 규모의 한국의 대미 투자 지연 문제가 있다. 한미는 지난해 11월 최종 합의 후 '1차 프로젝트' 확정을 위한 논의를 길게 이어왔지만,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은 이를 문제 삼아 다른 한미 간 현안도 모두 지연시키는 협상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 때문에 정부가 올해 11월까지 '상당한 진척'을 원했던 핵잠 도입과 원자력 협정 개정이 기약 없이 미뤄진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11월쯤 한미 국방당국의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의 목표연도를 정하겠다는 정부의 구상도 어그러질 공산이 크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배제하고 '나 홀로 대북 협상'에 나설 것 같은 모습마저 보이면서 정부도 미국의 마음을 돌릴 '다른 액션'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당초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미국 측의 기여 요구에 △소말리아 아덴만 인근 해역에서 작전하는 청해부대 소속 함정의 작전 구역을 확대하는 방안 △한국에서 미국 측 수요에 맞는 병력 파견이라는 두 가지 안을 놓고 검토를 진행해 왔다.
이 중 청해부대 활용안은 최근 들어 깊이 있게 검토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미국 측에서 '수요에 맞는 파병'을 더 선호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데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청해부대의 작전구역 확대는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지 않지만 별도의 병력 및 자산 전개는 국회의 '파병 동의안' 통과가 필수라는 점에서 정부의 입장에선 조금 더 복잡한 방정식을 적용해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나리오다.
파병과 관련한 미국 측의 구체적 요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현재 해군의 1만 1000톤급 신형 군수지원함 '소양함'(AOE-II), 신형 해상초계기 '포세이돈'(P-8A) 등과 폭발물처리(EOD) 전력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양함은 원양 해역에서 작전 중인 함정에 연료, 탄약 등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전력이다. 기존 천지급(AOE-I) 대비 적재 능력이 2.3배 가량 높아지고 기동 속력 및 장거리 수송·지원 능력이 향상된 게 특징이다.
P-8A는 최신 해상초계기로, 상선 호위 임무 수행 때 공중 감시 및 정찰 지원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 유사시 해상 표적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공대함유도탄 및 어뢰 등도 갖추고 있다. EOD 전력은 항만 및 함정 주변에서 기뢰 등 폭발물에 대응하는 전문 인력이다. 파병 병력의 수는 현재로선 정확한 추산이 어렵지만 이 세 가지 자산이 다 전개된다면 대략 150여 명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자산들은 정부가 '비전투 전력'으로 분류하는 무기체계이기도 하다. 해군의 주축 전함인 이지스구축함이나 전투기와 같은 '공격용 전력'은 정부의 검토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병시 자칫 중동 국가들의 강한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이날 기준 파병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상황 관리를 위한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미국 측의 압박이 더 강해진다면, 정부의 기조도 빠르게 바뀔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국민적 지지와 국회 동의라는 절차다. '파병' 발표에 앞서 정부가 파병의 당위성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설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민적 동의가 어느 정도 확보된다면 국회 동의는 오히려 '후속 절차'일 뿐이라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2003년 이라크 파병 때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3월 20일)한 뒤 4월 2일 국정연설까지 진행하면서 국회의 파병 동의안을 끌어냈던 전례를 참고해야 할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자칫 국민 여론이 모이지 않는다면 파병을 두고 여론이 양분되는 부작용도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일련의 호르무즈 파병 관련 논의가 파병 자체에서 얻는 국익보다 미국의 고강도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검토돼 왔다는 점은, 오히려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미 투자 1차 프로젝트에 대한 한미의 '합의'가 도출된다면 파병 문제는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3일(현지시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대미 투자 첫 프로젝트 발표 시점이 9월을 넘기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이 경우 미국 측의 '호르무즈 기여' 압박을 줄일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여전히 정부 내에서 감지된다.
kimyew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