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 찾고 증언 듣는다…66년 전 4·19 유공자 공적 이제 '현장서 확인'

보훈부, '현지조사' 규정에 명문화…자료 수집 체계화
이재명 대통령 "한 분이라도 더 찾아내 포상·기록·예우할 것"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6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6.4.19 ⓒ 뉴스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국가보훈부가 4·19혁명 유공자 공적심사 과정에서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학교 등을 직접 찾아 학보 등 기록을 발굴하고 관련자들의 증언을 듣는 현지조사 절차를 규정에 명문화한다.

21일 정부에 따르면 보훈부가 최근 행정예고한 '4·19혁명유공자 서훈공적심사위원회 운영규정' 일부개정훈령안에는 공적심사에 필요한 자료 수집 등을 위해 현지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보훈부 관계자는 "현지조사는 참여학교 등 현지 방문을 통한 자료 수집, 관련자 진술 청취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기존에도 실시했던 것"이라며 "이번에 규정에 명문화해 자료 수집을 더욱 체계적으로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4·19혁명 유공자 공적심사는 혁명의 계획 수립이나 시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기본으로 이뤄진다.

다만 66년이 지난 사건인 만큼 신청인이 주장하는 내용이 기존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거나 일부 사실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훈부 관계자는 "신청인의 주장이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거나 일부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는 경우도 있다"라며 "문헌자료뿐 아니라 주장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구체적인 진술 내용도 현지조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4·19혁명은 1960년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학생과 시민들이 일으킨 민주화운동이다. 2월 28일 대구 학생들의 항거를 시작으로 3월 8일 대전, 3월 15일 마산으로 시위가 이어졌고, 이후 전국적인 저항으로 확산됐다.

특히 마산 시위 과정에서 실종됐던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4월 11일 발견되면서 분노가 전국으로 번졌고, 4월 19일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같은 달 26일 하야했다.

정부의 4·19혁명 유공자 발굴·검증 작업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문헌자료가 발견되거나 과거사 조사에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될 경우 추가 심사를 통해 뒤늦게 공적을 인정받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2018년에는 마산 3·15의거 관련 문건이 새로 발견된 것을 계기로 2·28민주운동과 3·15의거 등을 포함한 4·19혁명 유공자 추가 포상 신청이 진행됐다. 정부는 올해 제66주년 4·19혁명 기념식을 계기로 총 70명을 새롭게 포상하기도 했다.

올해 포상까지 포함하면 1962년 첫 포상 이후 4·19혁명 관련 정부 포상자는 총 1234명이다. 이 가운데 희생자는 186명, 부상자는 363명, 공로자는 685명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4·19혁명 기념사에서 "정부는 앞으로도 4·19혁명을 포함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모든 분을 한 분이라도 더 찾아내 포상하고, 기록하며 예우할 것"이라고 밝혔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