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트럼프 거부하며 망신 준 북한…머쓱해진 한국, 안보엔 '구멍'

김여정, '김정은과 소통' 트럼프 주장 반박…'대북 유화 조치' 전면 거부
나흘간 '우당탕'한 한미, 소득 없이 연합방위태세·긴밀한 소통에 구멍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8.18.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서재준 한상희 기자 = 북한을 대화로 끌고나오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단'이 일단 실패로 귀결되는 듯한 양상이다. 지난 나흘간 연합연습 축소와 북한과의 대화 국면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쁘게 움직인 한미를 향해 북한은 "전혀 관심이 없다"라는 허망한 답만 내놨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동생이자 북한의 대외 사안을 총괄하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19일 밤늦게 낸 '주요 국제 문제들에 대한 입장'이라는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화책'으로 제시한 한미 연합연습 축소에 대해 "평할 가치가 없으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이라며 '수용 거부' 의사를 밝혔다.

김 부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김 총비서와 소통했다고 주장한 것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마도 우리 최고지도부의 대외 정책과 관련해 내가 알지 못하는 유일한 사안일 것"이라며 조롱에 가까운 촌평을 하기도 했다.

北 김여정, 한밤중 담화로 트럼프 주장 전부 반박…대화 선 긋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지난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 때 김 총비서와 찍은 사진을 올리며 친근감을 표했다.

이어 16일(현지시간)엔 "내가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미국이 오래전부터 한국과의 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기로 동의했다는 사실에 불만을 갖고 있다"라며 연합연습의 축소를 지시했다.

그는 17일(현지시간)엔 기자들과 문답 과정에서 김 총비서가 자신의 제안에 '응답'을 했다면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을 표했다는 취지의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 발언'이 이어지자 한미 당국은 급박하게 움직였다. 한미 국방부는 지난 17일 개시한 하반기 정례 연합연습 '을지 프리덤 실드'(UFS)의 축소 조치를 즉각 협의해 당초 11일간 진행하려던 훈련의 일정을 5일로 단축했다. '방어+반격 연습'으로 구성된 훈련의 '방어 연습'만 하는 것으로 반토막 내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 이행을 위한 '속도전'을 진행했다.

외교부는 북미 대화의 '급진전' 가능성에 주목하며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을 진행하고 중국 등 주변국과도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연합연습의 축소 조치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 발신에 주력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출처=조선중앙TV 갈무리) 2022.8.11 ⓒ 뉴스1

그러나 이같은 조치가 북한을 움직이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한미가 올해 초부터 진행한 육·해·공군의 연합훈련과 상반기 정례 연합연습 '프리덤 실드' 등을 언급하며 "이번에 축소했다는 연습은 이미 다른 훈련으로 대체됐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훈련의 규모나 기일이 줄어든다고 해서 도발적, 공격적 성격의 군사연습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라며 한미가 군사 협력의 '톤 조절'만 하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부장은 아울러 "국가의 안전이익과 지역 안전 환경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 미국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게 변함없는 현실"이라며 "미국 측이 이번에 취한 자기들의 조치를 '선의의 조치'로 선전한다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대북 정책 전환과 '핵보유 인정' 거듭 주장…문턱 높인 대화 기준 고수

다만 김 부장의 이날 담화만으로 북한이 미국과의 외교에 모든 관심을 끊은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평가도 가능해 보인다.

김 부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총비서가 소통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서도 "우리 국가수반(김정은)이 트럼프에 대해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음은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라며 "두 지도자의 관계는 훌륭하며 이는 세상이 다 아는 일로 놀랄 것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북미 대화는 '최고지도자'인 김 총비서의 결단으로 가능한 측면이 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김 부장은 그러면서도 "미국의 대조선(북) 적대시 정책은 변하지 않아 왔다"라며 "조미(북미) 두 지도자들의 훌륭한 관계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취하는 주권적 행사는 상식적이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역사와 현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더욱 강한 억제력을 가질 때 지역의 안보 구도가 보다 균형화, 안정화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라고도 주장했다.

김 부장의 주장은 그간 북한이 주장해 온 '핵보유국 입지 인정'과 연계해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북한이 그간 자신들의 핵능력 고도화가 '미국과 추종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주권 행사'이자 억제력 표출이라고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다.

김 부장의 주장을 종합하면 연합연습 중단 및 축소 등 과거 방식의 '유화책' 제시로는 대화에 나설 의향이 없지만, 미국이 각종 대북제재 등 '적대 정책'을 철회하고 북한의 핵보유국 입지를 인정해야 대화를 고민해 볼 수 있다는 '높아진 대화의 문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소득 없는 연합연습 축소…연합방위태세와 한미 소통에 '구멍'

'대화 거부'라는 태도를 바꾸지 않은 김 부장의 담화에 따라 한미가 지난 나흘간 단행한 여러 조치들은 큰 소득이 없는 행동이 됐다는 비판적 평가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와 주장에 따라 대북 대화 국면 전개의 불씨를 지핀 것이, '군불'만 뗀 셈이 됐다는 점에서 다소 머쓱한 입장이 됐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8회 국회(임시회) 외교통일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8.19 ⓒ 뉴스1 유승관 기자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남북 관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단초가 됐다고 생각한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역시 외통위에 출석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과 관련한 고심에서 나온 것"이라며 "통일부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공감하는 입장에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조금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정부의 기대감은 다시 기약할 수 없는 바람이 된 듯하다는 평가다.

특히 한미가 이미 개시한 연합연습을 축소하는 사상 초유의 조치를 취하면서 연합방위태세에 구멍이 생기고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한미가 중대한 '외교적 패착'을 뒀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제기된다.

이는 미국 행정부 입장에서도 '트럼프 리스크'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측면이 있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SNS 발표' 전까지 연합연습의 축소 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후 주한미국대사와 접촉하고 주미대사관의 모든 채널을 가동해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하려 애썼으나 미 행정부 측에서도 딱 떨어지는 답을 주진 못했던 것으로 전해져 한미 간 소통에 공백이 있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