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불안정한 시대를 견디는 법

(서울=뉴스1) 서재준 외교안보부장 = 최근 소셜미디어(SNS) '스레드'의 핫 이슈 중 하나는 북한의 '난수 방송'이었다. 북한이 남파 공작원에게 보내는 지령을 암호화해 라디오나 TV로 '몰래' 전파하는 난수 방송이 재개됐다는 것이다.
스레드에서 활동하는 난수 방송 신봉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 사회를 어지럽히기 위한 각종 공작을 준비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숨겨 북한이 '대남 점령'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유일하게 이 사실을 아는 미국의 CIA가 한국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모종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믿는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곧 큰 거 온다"이다. 무엇이 큰 것인지, 언제, 누구로부터 '큰 것'이 오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이들은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부임할 때도 한국의 정권 교체를 위한 '큰 것'이 왔다고 주장했다.
허황한 이야기를 보며 프랑스 혁명 시기를 그린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펭귄클래식 코리아, 2012, 이은정 옮김)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1859년 출간된 이 책에서 디킨스는 1789년의 프랑스를 이렇게 묘사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스레드에 펼쳐진 일부 세상을 보면, 디킨스의 시대 묘사는 그로부터 237년 뒤 '미래'인 현재에도 적용이 가능해 보인다. 어쩌면 인간은 같은 시대를 다른 시간 속에서 사는 존재일 수도 있다.
디킨스는 자신이 그리려 한 시대의 분위기를 이분법으로 묘사했다. 이분법은 명쾌하지만 때때로 오류, 혹은 큰 공백이 있다. 선명한 논리로 교훈을 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킬 수는 있으나,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 지나 보낸 많은 과정과 존재가 일순간에 소거된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현실에선 최고와 최악, 지혜와 어리석음, 믿음과 의심, 빛과 어둠 사이를 구성한 치열한 시간과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두 도시 이야기'의 시작이 내게 울림을 준 이유는, 마치 저 문장이 인류가 꾸리고 지낸 모든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설명처럼 보여서다. 시대는 이처럼 늘 불안정하고, 사람은 늘 부족한 존재인가. 그래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극단적 언어로 표현하고, 나와 다른 사람은 없애려 하며, 나와 내 편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조작과 선동을 불가피한 수단, 혹은 적확한 무기로 여기는 것일까.
사실은 힘을 갖고 싶으면서, 이기고 싶으면서, 그저 욕구를 채우고 싶으면서, 자신의 언행을 '정의와 진리'로 포장하는 사람과 이를 승리로 여기는 세상이 좀 피곤해졌다.
그래도 인류는 늘 발전해 왔고, 우리는 과거가 아닌 '현생'을 살고 있으니 시대의 불안정을 마냥 불안해할 필요도, 부족한 우리의 안목에 좌절해 주저앉을 필요도 없다. 지나간 현인의 이분법이 우리의 결론이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는 이분법의 '사이'를 구성하는 시간과 사람에 더 집중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누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를 더 관대한 마음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양극단의 결론을 향한 맹신과 신봉보다 어렵고 괴로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그 시대를 구성하는 사람에 대해 후회 없이 사유하는 게, 우리를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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