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역사의 그늘에 온기를"…같은 날 日각료들은 야스쿠니 참배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 제안하며 과거사 직시 주문
셔틀외교·안보협력 속 사도광산은 표류…역사인식 간극 여전
-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향해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이 되자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의지를 재확인했다. 다만 경제·안보 분야와 달리 과거사 현안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일본의 진정성 있는 호응을 주문했다.
같은 날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는 대신 공물을 봉납했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 등 현직 각료와 집권 자민당 핵심 간부들이 야스쿠니를 직접 찾았다. 과거사와 미래 협력을 병행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대일 구상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지난 1년 동안 한일 양국은 활발한 셔틀 외교를 이어가며 신뢰의 기반을 다져왔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본 정상과 일곱 차례 만나며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왔다. 취임 약 2주 만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시바 시게루 당시 총리와 첫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취임 80일 만에는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찾았다. 이후 다카이치 총리와도 서로의 고향인 일본 나라현과 경북 안동을 오가는 '고향 셔틀외교'를 이어갔다.
정상 간 밀착은 안보·경제 분야의 실질 협력으로도 이어졌다. 한미일 다영역 군사훈련 '프리덤 에지'가 실시됐고, 한일 수색구조훈련은 9년 만에, 서울에서의 한일 국방장관 회담은 11년 만에 재개됐다. 공급망과 에너지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의 폭을 넓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앞으로도 실용적 국익 외교를 바탕으로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의 지평을 넓히겠다"며 "가깝고도 먼 이웃이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서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60년을 함께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미래 협력만 강조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의 성과가 흔들림 없이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두 나라 국민 간의 굳건한 신뢰가 필요하다"며 "신뢰란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공감하는 진정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까지도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이 계신다"고 언급한 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직접 거론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진정성을 토대로 미래를 열고자 했던 노력들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새로운 한일관계의 빛은 역사의 그늘 속에서 여전히 아픔을 감내하고 계신 분들께 따뜻한 온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사 문제를 덮어둔 채 미래 협력만 앞세워서는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어렵다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로 정상 간 관계 개선의 속도와 달리 과거사 현안은 좀처럼 진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2024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전체 역사'를 알리고 매년 한일 공동 추도식을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일본 측이 추도사에 '강제 징용'을 인정하는 표현을 명기하지 않으면서 지난 두 차례 추도식은 파행했다. 올해도 광복절까지 개최 시기와 방식이 정해지지 않아 3년 연속 별도 추도식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반면 새로운 과거사 현안인 조세이 탄광 유해 수습에서는 제한적인 진전이 나타났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1월 유해 수습과 신원 확인에 협력하기로 한 데 이어 5월 안동 정상회담에서 DNA 감정 착수를 발표했다. 현재 한일 양측 기관이 이미 수습된 일부 유해의 DNA를 감정하고 있지만, 추가 유해 발굴과 수습은 아직 양국 정부 공동사업으로 이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을 강조한 이날 일본 정치권에서는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움직임이 이어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지만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공물 대금을 봉납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과 기카와다 히토시 오키나와·북방대책담당상 등 현직 각료와 자민당 핵심 간부들은 직접 참배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참배할 때마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역사 인식 문제를 제기해 왔다.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후 처음 맞은 패전일에 직접 참배를 피한 것은 한일관계와 한미일 협력 등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공물 봉납을 이어가고 현직 각료와 집권당 지도부가 참배했다는 점에서 양국 간 역사 인식의 간극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는 과거사 때문에 한일관계 전체를 경색시키지도, 반대로 경제·안보 협력을 이유로 과거사를 뒤로 미루지도 않겠다는 '투 트랙'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전략경쟁과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일 간 전략적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는 결국 양국 국민 간 '신뢰'라는 게 이 대통령의 인식으로 보인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자 중요한 동반자"로 규정하며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강조했다면, 올해는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일본의 진정성을 한일관계의 신뢰와 직접 연결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결국 이 대통령이 제시한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이 현실화하려면 경제·안보 분야의 협력 확대뿐 아니라 사도광산 추도식과 조세이 탄광 유해 수습 등 과거사 현안에서도 한국 국민과 피해자가 체감할 수 있는 일본의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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