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스캠' 눌렀더니 중동·아프리카로…근절커녕 '풍선 효과'

동남아 초국가범죄 체포 한국인, 1년새 100명→462명 '급증'
단속 피해서 점조직으로 운영…전 세계로 활동 반경 확대

경찰청이 지난해 운영한 한국-캄보디아 '코리아 전담반'을 통해 검거한 범죄 혐의자들의 모습. (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2.21 ⓒ 뉴스1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캄보디아에서 온라인 스캠 범죄에 연루돼 감금 등 '피해를 본 한국인'은 크게 줄었지만, 동남아 각국에서 스캠 등의 초국가범죄 혐의로 '검거된 한국인'은 오히려 1년 사이 4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13일 나타났다. 캄보디아에서 활동했던 스캠 범죄조직은 주변국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이동해 점조직으로 단속을 피해 활동을 지속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세계 각지에서 우리 국민이 연루된 초국가범죄의 '풍선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동향이 포착되고 있다"며 "초국가범죄 조직들은 전 세계 어디든 작은 빈틈만 있으면 숨어들어 놀라운 속도로 범죄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피해 94% 줄었지만…범죄 가담 한국인 검거는 4.6배 늘어

외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캄보디아에서 스캠 범죄에 연루돼 감금 등 피해를 봤다는 한국인의 신고는 1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25건보다 약 94% 감소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범정부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캄보디아 정부와 공조해 대규모 스캠단지를 집중적으로 단속한 성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범죄 가담 혐의로 검거된 한국인은 오히려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 캄보디아·베트남·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라오스 등 동남아 6개국에서 온라인 스캠과 온라인 도박, 마약 등 초국가범죄 연루 혐의로 검거된 한국인은 46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0명의 4.6배에 이른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 캄보디아에서만 한국인 187명이 검거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2명의 15.6배다. 감금 등 피해 신고가 급감한 것과 별개로 한국인의 범죄 가담은 여전히 대규모로 이뤄지는 셈이다.

주변국에서도 증가세가 뚜렷했다. 베트남에서는 올해 상반기 117명이 검거돼 지난해 전체 50명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태국도 70명으로 지난해 전체 67명을 이미 넘어섰다. 이어 말레이시아 50명, 필리핀 20명, 라오스 18명 순이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검거된 우리 국민 초국가범죄 혐의자가 대폭 증가한 것은 풍선효과의 증거인 동시에 우리 정부와 해당국 정부 간 공조가 강화된 결과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막자 중앙아시아·중동·아프리카로…범죄 근절 쉽지 않다

범죄조직들이 단속을 피하는 주요 방식은 '거점 이동'이다. 캄보디아에서 베트남·태국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는 '1차 풍선효과'를 넘어 최근에는 중앙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 원거리 제3국으로까지 거점을 옮기는 '2차 풍선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대규모 스캠 단지가 점조직으로 분화됐다는 점도 특징이다.

범죄조직은 대규모 스캠 단지가 단속의 표적이 되자 일반 주택이나 콘도를 빌려 소규모 점조직으로 활동하고, 감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경지역과 지방 소도시로 숨어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과 음식점·마트 등 생활 기반이 잘 갖춰진 곳이나 현지 경찰의 대응 역량과 관련 규제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를 새로운 거점으로 선택하는 경향도 감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달에는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거쳐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콜센터를 차린 한국인 스캠 조직원 14명이 현지에서 검거돼 전원 국내로 송환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들은 금융감독원 등 정부기관을 사칭하고 피해자를 외부와 단절시키는 이른바 '셀프 감금' 수법으로 한국인 16명에게 약 6억 원의 피해를 준 혐의를 받는다. 정부는 이 사건을 동남아 인접국을 벗어나 원거리 제3국으로 근거지를 옮긴 '2차 풍선효과'의 실체가 확인된 첫 사례로 보고 있다.

범죄의 여파는 아프리카에까지 미쳤다. 지난 6월에는 캄보디아 체류 이력이 있는 20대 한국인 남성이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중국인 14명과 함께 온라인 스캠 연루 혐의로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남성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인공지능(AI) 등을 통해 번역과 통역이 쉬워지면서 외국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사칭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환경이 된 것 같다"며 연고가 없는 고령자가 아프리카 등으로 출국할 경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외교부, 5월 '초국가범죄 대응 공관장 그룹' 신설…범죄 동향 실시간 공유

외교부는 범죄조직의 국가 간 이동을 추적하기 위해 지난 5월 내부 전문시스템에 '초국가범죄 대응 공관장 그룹'을 신설했다.

중국 지역 10개 공관과 동남아 지역 18개 공관을 비롯해 스리랑카·아랍에미리트(UAE)·카자흐스탄·일본 등의 재외공관이 참여해 주재국의 범죄 동향과 대응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외교부는 캄보디아의 '코리아 전담반' 업무 범위를 스캠 범죄에서 마약과 온라인 도박까지 확대했다. 필리핀에는 코리안데스크 담당 경찰관 4명을 파견했고, 태국 경찰청과 마약통제청에도 경찰 협력관을 각각 1명씩 두고 있다. 중국·말레이시아·일본과는 초국가범죄 공동 대응을 위한 양해각서 또는 협력각서를 체결했다.

다만 범죄조직이 수사망을 피해 빠르게 점조직화하고 제3국으로 이동하는 데다 범죄 가담을 목적으로 출국하려는 사람을 사전에 가려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여권법에 따라 여권 발급을 제한할 수 있지만, 출국하는 사람이 범죄에 가담하러 가는지는 사전에 알기 어렵다"며 "개인의 내심에 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미리 막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angela02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