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스틸, 솔직하고 실용적…트럼프 의중 강한 어조로 대변할 것"
한인 후보 美 의회 입성기 다룬 다큐 '초선' 제작 전후석 감독 인터뷰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한 사이…李 정부와 '실용주의'로 협력 가능성"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미국에서 미셸 스틸은 한마디로 '솔직하고 화끈한 사람'으로 평가되죠.영화 촬영 당시에도 카메라 온·오프에 가장 구애받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변호사 겸 영화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전후석(조셉 전)씨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주한미국대사인 미셸 스틸(70·한국명 박은주)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뉴스1은 지난 19일 경기 성남시 모 카페에서 전후석 감독과 만나 스틸 대사를 둘러싼 미국 정치계 및 한인 사회 내부의 평가를 묻고 들었다.
전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만난 미셸 스틸이라는 사람은 정말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이었다며 "다만 저는 정치학자나 외교 전문가는 아닌 만큼, 미셸에 대한 제 의견은 개인적인 차원의 것임을 알아주시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전 감독은 지난 2020년 미국 연방하원 선거에 도전하는 재미 한인 5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초선'(2022)을 제작했다. 이를 위해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까지 매일같이 미셸 스틸을 비롯한 5명의 한인 후보자들을 취재하며, 강경한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자 이민자 출신의 개인으로서 그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했다고 한다.
전 감독은 평범한 주부였던 스틸 대사가 미국 내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 대우와 로스앤젤레스(LA) 폭동 사태 등을 계기로 정계에 진출했다는 배경을 언급하며 "매우 현실적인 문제의식이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그가 북한과 중국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 것을 두고는 "실향민 2세 출신으로서의 정체성도 있지만, 유력한 공화당 인사인 남편 숀 스틸 변호사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미셸이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한 이후 이같은 강경 노선을 부각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 감독은 스틸 대사가 남편 숀 스틸 변호사를 '연결고리'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에 있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숀 스틸의 관계가 미셸이 대사로 지명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스틸 대사는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주한미국대사 후보자로 지명된 지 두 달 만인 지난 17일(현지시간) 미 상원의 인준을 받았다.
우리 정부도 아그레망(외교 사절에 대한 주재국의 사전동의)을 부여함에 따라 스틸 대사는 조만간 한국에 부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국대사직에 한국계 인사가 오는 것은 성 김 전 대사(2011~2014년)에 이어 두 번째다.
1955년 서울 출생인 스틸 대사는 일본에서 성장한 뒤 197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위원과 오렌지카운티 감독위원을 지낸 뒤 2020년과 2022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해 잇따라 당선됐다. 2024년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스틸 후보자는 대중·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며, 특히 탈북민 인권 문제 등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인물이다. 그는 미 상원의 청문회에서는 한미 양국이 합의한 공동 팩트시트에 따른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 이행을 지원하고, 한국 내 미국 기업에 대한 비관세 장벽과 차별 문제를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전 감독과의 일문일답.
-영화 '초선(Chosen)' 촬영 과정에서 스틸 대사를 약 반년 동안 밀착 취재했는데, 가까이서 본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정치인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서 그의 모습도 궁금하다.
▶미국에서 미셸 스틸을 잘 아는 사람들은 보통 '꾸밈없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이야기한다. 미셸은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외교적 수사법을 사용하기보다는 본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성격도 그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실제로 영화 '초선'을 촬영할 때, 미셸은 카메라의 온·오프 때의 모습이 가장 차이가 없는 정치인이었다. 아마도 미셸이 전형적인 '직업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미셸은 미국에서 이민자로서의 척박한 삶을 살아왔고, LA 폭동을 겪으며 정치에 눈을 뜬 사례다. 또 어머니가 운영하던 사업체가 캘리포니아 조세당국으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은 경험 역시 그가 향후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위원을 맡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인지 미셸이 잘 다듬어진 '엘리트 정치인'과는 많이 다르다는 인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일각에서는 과거 스틸 대사가 중국과 북한을 향해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그를 매우 '이념적인 정치인'이라고 평가한다.
▶누군가 미셸이 가진 어떤 정치적 신념이 있냐고 묻는다면 '실용주의' 외에 '반공주의'가 있다고 답할 수 있겠다. 이건 사실 가족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미셸의 부모는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실향민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1960~1970년대 한국에서 교육부 소속으로 일하며 외교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미셸의 성장 과정에 당시 한국 정부의 반공 정책이 강하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남편 숀 스틸을 만나면서 미셸의 반공주의적 색채가 강화됐다. 미셸의 정치 인생을 이해하려면 당사자보다 남편 숀 스틸을 더 잘 봐야한다. 숀 스틸은 변호사이면서 캘리포니아 공화당에서 오랫동안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정치 파워브로커'다. 미셸이 연방 하원에서 낙선한 뒤 주한미국대사로 지명되는 과정에도 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숀 스틸은 어떤 이력을 가진 인물인가.
▶숀 스틸은 냉전시기 미 공화당 주류 정치권에서 성장한 인물로, 반공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미셸의 가족사와 숀의 정치 철학이 결합되면서 '실용주의자' 미셸이 유독 중국과 북한 문제에서는 강경한 입장을 갖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미셸이 정치인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이민자로서의 경험에 있다고 본다. 미국 사회에서 밑바닥부터 삶을 일궈온 사람으로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동기가 더 컸다는 것이다. 여전히 합리성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미셸의 정치 인생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셸을 단순히 '강경 보수파'라고 본다면 그의 행보를 제대로 읽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실용주의와 반공주의, 이민자 출신으로서의 정체성과 미국 보수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미국 내 한국계 정치인으로서의 자리와 주한미국대사로서의 자리는 다른 법이다. 앞으로 그가 어떤 쪽에 우선순위를 둘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스틸 대사가 워싱턴에서 갖는 정치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나. 한국 정부가 그를 통해 백악관과의 소통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보나.
▶다시 숀 스틸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는 공식 직함보다 막후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우선 그는 미국 최대 주 가운데 하나인 캘리포니아 공화당 의장을 지낼 정도로 정치적 기반이 매우 탄탄하다. 더 눈여겨볼 점은 그가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보다는 전통적인 공화당 세력에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미셸이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도 숀이었고, 앞으로 주한미국대사가 돼서도 숀과 트럼프 대통령 간 채널은 긴밀히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셸 또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도가 높은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게 한국 정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셸이 한미 정상 간 '핫라인' 역할을 잘해준다면 좋겠지만, 반대로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 측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 출신 정치인들은 늘 '국가에 얼마나 충성하는가'를 의심받는다. 특히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미셸은 미 보수 진영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처럼 소비되는 인물이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에서 백악관과 공화당의 노선을 적극 대변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재 한미 간에는 핵추진잠수함(핵잠) 도입과 한국의 대규모 대미 투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하다. 스틸 대사가 양국 간 갈등을 키우지 않고 협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대사직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보다 미국 행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에 가깝다는 점에서 미셸 개인의 색채가 얼마나 크게 작용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미셸이 겉으로는 굉장한 보수 성향의 정치인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제가 그를 직접 만났을 때와 미셸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는 평가가 조금 달랐다는 점이다. 미셸은 실용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고, 이를 위해 미국 내 민주당 인사들과도 폭넓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민주당 소속인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과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미셸이 대사로서 무조건 이념만 앞세우는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실용주의라는 원칙 안에서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는 이재명 정부와 협력할 공간이 충분하다고 본다. 현실적인 협상을 중시하는 미셸이 한미 간 상호 이익이 분명한 사안에서는 충분히 유연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는 스틸 대사의 임명을 어떻게 평가하나.
▶솔직히 말하면 부정적인 평도 적지 않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대적인 이민자 단속을 비롯해 강경한 반(反) 이민정책을 펼쳤는데, 미셸은 이민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친(親) 트럼프 기조를 유지하며 주요 임명직까지 맡게 됐다. 그런 점에서 한인 커뮤니티 내에서 미셸에 대한 비판이 있다.
최근 상원 인준 과정에서도 미셸은 한국 내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문제를 지적했는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미셸이 미국 보수 진영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표출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생각과 의견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한인들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북한과의 대화에 관심을 보인다면, 스틸 대사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미셸의 내면에서 두 가지 정체성이 충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 기류를 조성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과거 실향민 가정에서 성장한 철저한 반공주의자기 때문이다. 과거 한반도평화법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했던 미셸이 오히려 북미 대화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일종의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니겠나.
개인적으로는 미셸이 이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한반도의 미래가 미국 정치인 몇 명의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7년 전 영화 '초선'을 만든 것도 그러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과정을 보면서, 당시 협상장에 한국계 미국인 정치인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계 정치인들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백인 주류 정치인들보다 한 번이라도 더 깊게 고민할 수 있지 않겠나. 미셸이 주한미국대사로서 그런 역할을 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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