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무 월북 사건' 연루자 '전사' 처리…정부 첫 판단 나왔다
육군본부 보통전공사상 심사위, 이강종 이병 전사 결정
부대장에 속아 38선 넘은 뒤 북한군과 교전 중 숨진 정황 인정
-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창군 초기 최대 월북 사건으로 꼽히는 '강태무 월북 사건'에 휘말려 탈영 처리된 장병에 대해 군이 처음으로 '전사' 결정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25일 군 당국 등에 따르면 육군본부 보통전공사상 심사위원회는 최근 고(故) 이강종 이병에 대해 군인사법 제54조에 따른 전사 결정을 내렸다. 이는 이 이병이 적과의 교전 또는 적의 행위로 인해 사망했다는 점을 군 차원에서 인정한 것이다.
이 이병은 1949년 5월 강태무 월북 사건 당시 육군 8연대 소속으로 북한 지역으로 넘어간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고, 그동안 부대를 무단 이탈해 병적부에서 삭제된 '탈삭' 상태로 남아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은 국방부 조사본부 전사망민원조사단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뤄졌다. 조사단은 당시 같은 부대 소속으로 북측으로 넘어갔다가 귀환한 생존자의 증언과 병적기록부, 제적등본 등을 종합해 이 이병이 월북 직후 북한군과 교전하다 사망 또는 행방불명됐다고 결론내렸다.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육군이 전사 판정을 한 것이다.
강태무 사건은 1949년 5월 5일 강원 춘천지구에 주둔하던 육군 8연대 2대대장 강태무 소령이 예하 병력을 이끌고 39선을 넘어 북한군에 투항한 사건이다. 당시 강 소령은 부대원들에게 전투 또는 고지 탈환에 나선다고 속인 뒤 병력을 이동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소령에 하루 앞선 5월 4일에는 8연대 1대대장이었던 표무원 소령이 부대원들을 이끌고 북한으로 넘어갔다.
정확한 규모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지만, 당시 사건에 휘말린 장병은 700~800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가운데 일부는 귀환했지만 상당수는 전사·실종 또는 월북으로 처리됐고, 행방과 사망 경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강태무와 표무원은 북한에서 '의거 월북' 인사로 대우받았지만, 이들에게 속아 북측으로 넘어간 일반 장병들의 사망·실종 경위는 그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38선을 넘은 장병 가운데 상당수는 투항 지시에 따르지 않고 북한군과 교전했거나 포위망을 뚫고 귀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이번 결정은 강태무 사건과 관련해 국가 차원의 첫 전사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사건 관련 군 기록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아 다른 장병들에 대한 명예회복까지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이병의 경우 귀환 장병의 증언과 병적기록 등 구체적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에 전사 판단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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