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일상 지킨 80년 육군史 한자리에…기록정보관리단에 가다[르포]

1946년 국방경비대 자료부터 병적기록·전투기록 등 복원·관리
과학적 복원법으로 원형 회복…온·습도 유지해 기록물 영속성 높여

충남 계룡대 육군 기록정보관리단(기정단) '중요 역사기록물 복원사업' 현장에서 기정단 관계자가 복원처리 기록물의 결손부를 메우는 작업을 하는 모습. (육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24 ⓒ 뉴스1

(계룡=뉴스1) 김기성 기자 = 누렇게 바랜 종이들이 퍼즐 조각처럼 산산조각나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종이 색깔에 맞게 염색한 복원 용지를 한땀 한땀 붙이고 찢어진 부위의 짝을 맞추다 보니 1956년 육군 제6군단의 경기 포천지역 작전지도가 완성됐다.

70년 넘게 창고 깊숙이 묻혔던 종이조각이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고 지난 역사의 증거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육군은 지난 22일 6·25전쟁 참전용사 한희나 옹(96)이 자신의 전쟁 수기와 회고록을 육군 기록정보관리단(기정단)에 기증하는 것을 기념해 기정단의 문서 복원 과정과 관리 현황을 공개했다.

육군 등에서 생산한 문서들을 수집, 복원, 보존, 관리하는 기관인 기정단은 창군 이래 육군의 80년 역사가 한 자리에 모인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남 계룡대에 위치한 기정단의 지하 문서고에는 1946년 국군의 전신인 남조선국방경비대 인사명령서부터 한국전쟁 당시 생산 문서, 병적기록 및 병상 진료 기록에 이르기까지 약 680만 건에 달하는 기록물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특히 국가유공자 등록을 위해 필요한 병상기록은 전체 보관 문건 중 약 47%를 차지한다.

기록물 유형은 종이 문서를 비롯해 유리건판과 사진, 카메라 필름과 마이크로필름, 영상 기록물까지 다양하다.

국가유산 '6·25 기록' 8만여 점…복원부터 보관까지 과학적 전주기 관리
충남 계룡대 육군기록정보관리단(기정단)의 '중요 역사기록물 복원사업' 현장에서 기정단 관계자가 용문산전투 간 문맹 장병들에게 한글교육을 하면서 발행한 표창장을 보여주고 있다. (육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24 ⓒ 뉴스1

기정단은 지난 2020년 6월 24일 국가등록문화유산 제787호로 지정된 6·25전쟁 관련 기록 15종 7521건, 총 8만 1420점의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6·25전쟁 기록물은 유형별로 △정기작전보고 2700여 건 △작전명령 2600여 건 △부대 배치 및 규모, 무장 상태, 개전부터 종료까지의 시간별 전투 경과, 노획 및 피해 상황에 이르기까지를 담은 전투상보 1000여 건 등이다.

기정단은 현재까지 약 4만 9000여 점의 복원을 마쳤고, 올해 6800여 점의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날 오후 한 옹과 취재진은 계룡대 밖에 마련된 기록물복원사업장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복원 작업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복원 담당자들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복원 용지에 풀을 바르고 가느다란 집개로 복원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장시간 고개를 숙이고 작업을 이어온 모양인지 길게 빠진 그들의 '거북목'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기록물 복원 업무는 물성팀, 검수팀, 복원팀이 담당한다. 복원 작업은 '기록물 물성조사 및 복원 전 촬영 → 복원 대상물 검수 후 복원 방법 확정 → 복원 → 데이터베이스 등록 및 복원 후 촬영'으로 이뤄진다. 모든 업무는 전문인력의 '수작업'만으로 진행된다.

충남 계룡대 육군기록정보관리단(기정단)의 '중요 역사기록물 복원사업'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복원 기록물의 산성도를 측정하는 모습. (육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24 ⓒ 뉴스1

물성팀은 복원 대상 기록물의 크기, 재질, 용지의 두께 등을 측정하고 문서의 산성도(pH 농도)를 확인해 최적의 복원 방법을 선택하기 위한 기초조사를 진행한다. 산성도 측정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글자가 없는 국소 부위에만 액체 시료를 바르고 산도측정기 탐침 센서를 접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검수팀은 복원 대상 기록물에 붙은 오염물을 제거하고, 문서 테두리 등 파손 부위를 일부 복원해 본격적인 복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훼손을 막는 작업을 맡는다.

복원팀은 복원 대상 기록물의 색상과 재질, 산성도 등을 고려해 각각의 복원 용지를 직접 염색·제작하고, 결손 부위의 크기에 맞게 복원 용지를 직접 떼어 수작업으로 복구하는 일을 맡는다. 복원팀 작업대 뒤 벽면에는 갈색의 띠지가 채도별로 여러 다발씩 걸려 있어 작업 중 필요에 따라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었다.

기정단 관계자는 "복원 기술이 발달해 보다 좋은 기술로 복원할 수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해 복원 용지를 완전히 부착하지 않고 언제든 뗄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육군 기록정보관리단(기정단) '중요 역사기록물 복원사업' 현장에서 관계자가 복원처리 기록물을 촬영하고 색도를 측정하는 모습. (육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24 ⓒ 뉴스1

1940~1950년대 생산 기록물은 종이 원료, 제조공정의 차이로 인해 산화하는 특징이 있다. 산성도가 높으면 변색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종이가 바스러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기정단은 산성도가 높은 기록물의 경우 '탈산처리'부터 진행하고 복원에 들어간다고 한다.

테이프로 이어 붙인 기록물을 복원할 때는 불가피하게 테이프를 제거해야 하고, 이로 인해 잉크 탈락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인위적으로 개입해 글자를 복원하기보다는 문서 생산 당시 최초 상태로의 회복에만 우선 집중하는 것이 복원 작업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같은 작업을 마친 기록물들은 군 내부망의 'RMS 기록관리시스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다.

이날 한 옹이 기증한 수기 3점도 잔존 상태에 따라 복원 작업을 거쳐 기정단 문서고에 보관될 예정이다.

기정단은 올해 해외 파병부대에서 생산한 문서들의 국가등록문화재 등재를 진행하고 있다. 등재 절차가 마무리되면 관련 기록물의 복원작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축구장 면적 절반 크기 문서고…온습도 유지·화재 예방 시설 갖춰 영속성 높여
육군은 지난 22일 6ㆍ25전쟁 참전용사 한희나 옹(96세)을 충남 계룡대로 초청해 선배 전우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록으로 되새기는 시간을 마련했다. 사진은 6ㆍ25전쟁 참전용사 한희나 옹이 육군기록정보관리단 서고에 방문해 6ㆍ25전쟁 기록물 보존관리 현장과 기록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육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2026.6.24 ⓒ 뉴스1

기정단 지하 문서고는 지하 3층으로 구성돼 있다. 연면적은 3973㎡로 축구장(7140㎡)의 절반 정도 크기다. 지하 1층 문서고에는 의무기록과 해외파병부대 기록물, 병상일지 등이 보관돼 있고, 지하 2층에는 법무기록과 각종 비밀자료, 인사명령서와 정책기록 등이, 지하 3층에는 인사자력과 시청각 자료 등이 수장돼 있다.

땀, 침 등에 의해 기록물이 오염·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라텍스 장갑과 마스크, 덧신을 착용해야만 문서고에 들어갈 수 있다.

문서고 내부는 검찰을 소재로 한 콘텐츠에서 흔히 등장하는 '모빌랙 캐비닛' 수백 개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캐비닛 옆면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리자 바닥의 레일을 따라 캐비닛이 움직이면서 줄지어 놓인 수십 개의 종이상자가 나타났다.

기정단 관계자는 캐비닛 사이로 들어가더니 한 종이 상자에서 한지로 앞뒷면을 포장한 '낙동강 지구 전투상보'를 꺼내 한 옹 앞에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관계자는 "기록물끼리 맞부딪히면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훼손 등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기록물의 앞뒷면을 중성지(한지)로 덮어 보관하고 있다"면서 "또 철의 산화작용으로 인한 기록물 훼손 가능성도 차단하기 위해 스테이플러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종이로 만든 상자를 기록 보관함으로 사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래된 기록물은 빛, 온도, 습도 변화에 취약해 추가 손상을 입을 수 있다. 그 때문에 기정단 문서고 내부는 습도 40~55%, 섭씨 18~22도를 유지하기 위한 중앙공조시스템과 항온항습기를 갖추고 있다. 또 기록물 대부분이 종이이다 보니 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이너젠(Inergen) 소화 설비와 화재예방 감시체계도 갖추고 있다.

주용선 육군 기록정보관리단장(부이사관)은 "육군은 위기 때마다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르며 국민의 일상을 지켜왔다. 선배 전우들의 희생과 헌신이 담겨 있는 6·25전쟁 기록물은 국가 문화유산"이라며 "이 유산을 안전하게 보존해 후대에 계승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