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나무호 사건' 사실상 부인…'진실게임' 길어진다
'제3국 소행' 가능성 거론…'모르쇠' 전략에 정부 고심 깊어질 듯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이란 외교당국이 한국 선박 'HMM 나무'호 피격 사건과 관련해 외부세력에 의한 '공작'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정부가 이란 측 공격 가능성에 무게를 싣자 이에 대해 발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란은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자신들의 공격 연루설이 나올 때마다 '모르쇠' 전략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나무호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19일 제기된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조현 외교부 장관의 통화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 선박 공격의 배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가 (나무호를) 공격했는지 우리도 알지 못하며, 이 사건이 역내 어느 행위자에 의해 자행됐는지도 우리에게 의문"이라며 "이 문제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제기됐고, 우리도 이 지역의 다른 모든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조사하겠다고 (조 장관에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특히 바가이 대변인은 이번 사건이 역내 불안정성을 고조시키기 위한 '제3자의 음모'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동의 일부 세력은 불안을 가중시키기위한 어떤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며 "가짜 깃발 작전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고, 이론적·관념적 문제로 여겨선 안 된다. 이런 일은 여러 차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짜 깃발 작전'은 특정 세력이 자신의 소속을 숨기고 공격이나 테러를 감행한 뒤, 이를 적대국이나 제3자가 공격한 것처럼 조작하는 기만전술을 의미한다.
바가이 대변인은 이같은 공작의 행위자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부 선박이 공격받거나 걸프 국가에 무인기 공격 등이 가해졌을 때 이를 이스라엘 측의 위장 전술이라고 주장해 왔다.
현재 우리 정부는 나무호 피격이 이란 측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외교부는 나무호 사고 원인이 '미상의 비행체에 의한 타격'에 의한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 10일,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를란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렀다.
당시 외교부는 이란이 이번 사안의 관련국이기 때문에 조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정부가 나무호 사건의 조사를 마친 직후 이란 측 대사를 부른 것은 사실상 책임을 묻는 '초치'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지난 14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란 외에 다른 어떤 주체에 의한 공격 가능성은 아직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한층 직접적인 판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 외무부가 자신들은 나무호 피격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제3국의 소행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은 한국 정부의 판단을 전면 부인하기 위한 '사전 포석' 격으로 풀이된다.
이란 정부는 이전에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중국과 태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 선박에 대한 공격이 발생했을 때, 자신들의 연루설에 대해 끝까지 발뺌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심지어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자신들의 공격 사실을 밝힌 사건에 대해서도 이란 외교 당국은 '미상의 발사체'로 인해 사고가 났다고 논평하며 끝내 정부 차원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이란은 '모르쇠'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우리 정부는 나무호를 타격한 비행체의 잔해를 지난 15일 국내로 들여와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 전문가를 중심으로 정밀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이와 별개로 나무호가 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10여명 규모의 기술분석팀을 보내 현지에서 추가 정밀 조사도 진행했다.
정부는 공격 주체를 지목할 '스모킹건'(결정적 증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다만 이란의 최근 반응을 볼 때, 일단 발뺌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리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최근 공격 주체가 명확해질 시, '응분의 외교적 공세'를 가하겠다고도 밝힌 상황인데, 이란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서 우리 측의 유감 표명 차원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이란이 그간 중동 전쟁에서 보여왔던 패턴을 보면 이번에도 나무호 피격 사건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인정하거나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며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여러 리스크를 고려해 이란을 향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규탄 성명 등의 수준에만 머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한국이 중동 에너지, 건설, 교역 측면에서 이란과 일정 관계를 유지해 온 국가라는 점에서 이란과의 외교적 관리 필요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중국과 프랑스 등 앞서 공격을 당했던 타국 역시 이같은 이유로 이란과의 정면충돌을 택하기보다는 성명 발표 등 외교적 차원의 조치만을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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