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이냐 아니냐…호르무즈 선박 화재 조사에 예민해진 정부

美는 '이란의 공격' 규정하며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 참여 압박
이란 소행·우발적 사고 등 시나리오 제기…원인 파악에 시간 걸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아랍에미리트(UAE)와 맞닿은 호르무즈 해협 내측 해상에서 발생한 우리 선박의 화재 사고와 관련해 정부가 원인 판단에 극히 신중하게 임하고 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이란에 있느냐 미국에 있느냐에 따라 사안이 180도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시간으로 지난 4일 밤 8시 40분쯤 호르무즈 해협 내측 UAE 샤르자 북쪽 움알쿠와인항 인근에 정박 중이던 HMM(011200)에서 운용하는 'HMM 나무'호 기관실 좌현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이날 오전 완전히 진압됐고 우리 국적 선원 6명을 포함한 선원 24명 전원 모두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청와대는 모두 이번 사고의 원인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일단 사고 선박을 인근 항구로 예인해 정확하게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신중한 태도는 이번 사고가 호르무즈 해협에 장기 체류 중인 선박들을 '구출'하겠다는 미국의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 개시 후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란이 이 작전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측의 무력 공방이 이어지는 와중에 사고가 터졌을 수 있기 때문에,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 책임 여부를 밝히는 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고의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현재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각 시나리오별 정부의 대응 방향이 상이할 수밖에 없고, 상황에 따라 미국이나 이란과의 외교적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사고 원인에 대한 최종 판단과 대응 방향 결정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① 이란의 '직접 공격' 가능성…'강경 대응' 여론 직면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나무호의 화재 발생 이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번 사고가 '이란의 공격'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진 않았다. 이란은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나 발생한 사고에 대한 논평이나 입장을 내진 않고 있다.

실제 이란이 우리 선박을 직접 공격했다면 파장이 불가피하다. 한국은 이번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무차별적 공격' 혹은 '미국의 동맹에 대한 보복'으로, 과도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달 10일 중동사태 발발 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특사(정병하 외교부 장관 특사)를 이란에 파견해 보름 가까이 교섭하며 밀접한 중동 외교를 진행한 바 있다. 이란 역시 한국의 중동 외교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공격이 단행됐다면 이란의 이중적 태도도 비판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이란에 대한 보복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여론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너지 공급선으로서의 이란의 영향력 때문에 정부가 '초강경 조치'를 취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란 측의 적절한 해명 등 빠른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는 국익과 여론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전쟁 초기 때부터 군함의 파견을 요구해 온 미국의 '참전' 요구도 더 거세질 수밖에 없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이란의 소행'을 주장하며 "한국이 작전(프로젝트 프리덤)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무호의 위치가 호르무즈 해협에 장기간 발이 묶인 수백 척의 선박 사이였다는 점에서 이란이 나무호를 '표적'으로 삼았을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도 있다. 이란이 굳이 한국의 배 한 척을 타깃으로 삼을 이유가 부족하고, 수백 척의 배 사이로 시도한 공격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 의도치 않은 다른 사고가 발생한다면 사안이 더 걷잡을 수 없이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미-이란 공방 중 드론 추락 등 '우발적 사고' 가능성

두 번째 시나리오로는 미국과 이란의 무력 공방 중 발생한 우발적 사고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브래드 쿠퍼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은 4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 개시 후 이란이 발사한 순항미사일과 드론을 요격하고 소형 보트 여섯 척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 파르스통신은 이란 남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 동쪽 오만만 쪽의 자스크 인근 해역에서 이란군이 미 해군 호위함 한 척에게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해 미군 함정이 퇴각했다고 보도했다. 일련의 발표와 보도는 미국과 이란이 '프로젝트 프리덤' 개시 이후 빠르게 무력 공방을 벌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란은 중동사태 이후 미국의 핵심 동맹 중 하나인 UAE의 미군 시설이나 공항에 수시로 드론 공습을 감행했고, UAE 측도 한국에서 수입한 '천궁' 등 요격미사일로 이를 방어해 왔다. 나무호의 위치도 이란의 드론 공습 위험 지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나무호에서 발생한 폭발과 화재가 격추된 이란의 드론 등의 잔해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 이란에서 선박을 '직접 공격'했다면 선박의 침몰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피해 규모는 훨씬 컸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전날 밤에 나무호에서 발생한 화재가 이날 오전 완전히 진화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애꿎은 선사만 큰 피해를 입는 셈이지만, 역설적으로 정부의 외교적 운신의 폭은 이란의 직접 공격이라는 시나리오에 비해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③ 미군의 실수라면…한미동맹에 파장 불가피

가능성은 작지만, 미국의 군사 작전 과정에서 미군 측의 무기체계가 직접 우리 선박을 타격한 것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군의 '공격'은 아니지만 오판 등에 따른 우발적 사고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고 원인을 발 빠르게 '이란의 공격'으로 규정한 것도 사고 원인을 흐리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이 경우 한미동맹에는 부정적 요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쿠팡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미국 정치권과 행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에 차질이 빚어진 상황에서 미군이 우리 선박에 직접 피해를 입혔다면 여론이 나빠질 공산이 크다.

특히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책임이 미국 측에 있을 경우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도 가장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미국은 책임을 부인하고, 한국은 이를 밝힐 수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면서 사고 원인 자체를 판단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