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해쳐 '북극 항로' 뚫는 쇄빙선…'K-방산'에도 기회 요인?

미·EU, '북극 항로'서 쇄빙선 확보에 총력…러·중 '회색 전술'에 대응
HD현중, 국내 첫 쇄빙 전용선 건조…한화오션, 쇄빙 초계함 MRO 역량 갖춰

한 연구전용선이 얼음을 가르며 북극해를 항해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북극 항로'가 주요 강대국들의 군사·에너지 안보 관점에서의 패권 다툼이 일어나는 '신전략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고부가가치 특수선에 해당하는 쇄빙선이 'K-방산'에 새로운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30일 나온다.

비록 군함 건조 및 유지·보수·정비(MRO)처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남극에서 연구용 쇄빙선을 정찰기 등과 함께 운용하는 등 '회색 전술'을 구사하는 빈도가 늘면서 이에 대응하는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의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EU, '북극 항로'서 쇄빙선 확보에 총력…러·중 '회색 전술'에 대응

쇄빙선은 북극해처럼 얼음으로 뒤덮인 바다를 이동할 때 해수면 얼음을 부숴 항로를 여는 역할을 하는 특수선이다. 척당 단가가 수천억 원 규모로 높고, 쇄빙 작업뿐만 아니라 얼음 관리, 함대 운영 지원 등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까다로운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건조의 난도가 높은 함선으로 분류된다.

쇄빙선은 발트해에 위치한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추운 겨울에도 항구를 얼지 않게 관리해 대외 무역 여건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북극 항로가 수에즈 운하 등 기존 무역 항로 대비 10~15일간 운송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지름길일뿐더러, 전 세계 미발견 석유의 약 13%, 천연가스의 30% 매장지로 알려지면서 '얼음길' 탐사에 필수적인 쇄빙선 수요도 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쇄빙선(40~50척 수준)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는 북극에 수십 개 이상의 군사기지를 건설해 통행 차단 등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 역시 스스로 '근(近) 북극' 국가라고 선언하며 쇄빙선 '설룡'호를 파견해 러시아와 에너지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등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같은 협력은 최근 미국 및 유럽 국가들의 안보 위협과도 직결되는 모습이다. 미 해양경비대에 따르면 미국 인근 북극해에서 중국 선박들의 연구 활동이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해 7월엔 설룡 2호가 미 연장대륙붕(ECS) 안쪽 130해리(약 240㎞)까지 진입해 미국이 장거리 정찰기 '허큘리스'(C-130J)를 띄우는 상황도 발생했다.

다만 ECS 자체가 미국이 자국 대륙붕을 100만 제곱킬로미터(㎢)가량 자체적으로 확장해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고유의 권한을 확보했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 일부 구역은 캐나다와 러시아도 관할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엔 미국 및 유럽 국가들도 쇄빙선 건조 및 MRO를 통한 극지 운항 능력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 해안경비대는 러시아 대비 쇄빙선의 양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1월 핀란드 업체와 32억 달러(4조 7187억 원 상당) 규모의 쇄빙선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2028년까지 핀란드 업체가 2척을 건조해 인도하면, 기술 이전을 받은 미 조선소가 2029년까지 4척을 건조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미국은 2024년 캐나다, 핀란드 등 서방 국가들과 90억 달러 규모의 'ICE 팩트(ICE Pact)'를 맺고 향후 10년간 최대 90척의 쇄빙선을 건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럽연합(EU)은 2025년 스웨덴 국영 쇄빙선의 개보수 및 현대화를 위해 2025~2029년 운영 프로그램에 600만 달러(88억 원 상당) 이상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러시아 원자력 쇄빙선 '50 레트 포베디'.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로이터=뉴스1
HD현중, 국내 첫 쇄빙 전용선 건조 돌입…한화오션, 쇄빙 초계함 MRO 역량 확보

쇄빙선의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되면서 군함 등 특수선 건조 및 MRO를 주 업무로 하는 한국 기업들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핀란드, 노르웨이 등이 전통적인 쇄빙선 건조 강국이지만, 한국 기업들도 특수선 관련 상당한 기술력을 갖췄을뿐더러, 미 조선소에서의 MRO 수요 등이 향후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329180)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스웨덴 해사청(SMA)과 쇄빙 전용선 1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최종 체결했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이 핀란드, 노르웨이 등 기존 강국과 경쟁해 최종 수주를 따낸 건 이번이 처음으로, 기술력 및 합리적 가격뿐만 아니라 'K-방산' 수출 시 보여줬던 안정적인 납기 준수 등이 수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HD현중이 수주한 쇄빙 전용선은 길이 126m, 배수량 1만 5000톤 수준의 대형 선박이다. 두께 1~1.2미터(m) 얼음을 연속적으로 깰 수 있는 'PC(Polar Class)4' 수준의 쇄빙 능력을 보유했으며, 전기추진체계가 적용됐다. 선박은 2029년 스웨덴에 인도돼 발트해에서 쇄빙 및 선단 운영 지원, 빙해 관리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HD현중은 과거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해저케이블부설선(Cable Layer), 드릴십(Drill Ship) 등 설계가 복잡한 특수 목적선 건조 이력을 바탕으로 빙해·저온 운항 선박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화오션(042660)의 경우 2008년부터 극지용 선박 개발에 임하는 등 쇄빙선 분야에서 기술력을 차곡차곡 쌓아왔다는 평가다. 쇄빙 LNG 운반선의 경우 지금까지 총 20척 이상을 건조하는 등 상당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엔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군항에서 쇄빙 기능을 갖춘 캐나다 해군의 초계함의 MRO 작업을 완수 후 인도하는 등 기술적 역량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는 "에너지 자원 및 항로 확보 등을 두고 북극에서의 러시아와 중국, 미국과 서방 국가 간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며 "쇄빙선을 활용한 '회색지대 전술'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고난도 특수선 건조 역량을 갖추는 건 한국 기업에 'K-방산'의 외연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