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팩트시트 이행 '동상이몽'이었나…안보 협의 밀린 이유는 '경제'

대미 투자·쿠팡 사안 연계…핵잠 협상 4개월째 공전
5월에도 핵잠 및 원자력 협력 협의 개시 안 되면 사업 차질 우려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올해 들어 한미의 핵추진잠수함 도입 및 원자력 협력 등 안보 관련 협의가 수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그간 정부는 미국 측의 '내부 사정'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했는데, 미국이 쿠팡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보 협의의 진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예상보다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24일 나타났다.

미국은 한미 정상의 합의 내용이 담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담긴 '디지털 기업에 대한 차별 금지' 문안을 내세워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진행된 수사에 영향을 끼치려는 동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를 역시 팩트시트에 담긴 합의인 핵잠 등의 사안과 연계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이 절실한 사안을 활용하는 것이자, 한미가 정상 간 합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서로 다름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상 간 합의가 체결되는 과정에서 한미가 '동상이몽'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통망법 개정에 '견제' 지속해 온 美…대미 투자 이어 쿠팡 사태로 압박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베트남 순방을 수행 중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전날인 23일에 열린 기자단 간담회에서 "쿠팡의 문제가 한미의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올 들어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한국을 찾을 경우 체포 등을 피할 수 있는 '신변 보장' 약속이 없다면 안보 관련 협의의 개시가 어렵다는 입장을 외교채널을 통해 수시로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수사 관련 특정한 조치를 요구한 것은 사법권에 대한 개입 시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미는 지난 1월 한국형 핵잠 도입과 한미 원자력 협력 개정을 위한 범정부 대표단의 협의를 개시할 예정이었으나, 이 협의는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미국 측이 협의를 미루는 이유로는 정부의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지연이 가장 유력한 사유로 꼽혔다.

하지만 쿠팡 관련 사안이 한미 협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최근 들어서야 확인된 내용이다. 종합적으로는 미국이 대미 투자와 쿠팡까지, 경제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음이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대한 미국의 우려도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위성락 실장은 지난 2월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나오는 관세에 대한 불만, 쿠팡 관련 불만, 한국 국회가 통과시킨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에 대한 불만이 안보 합의와 아무 관련이 없을 수는 없다"라고도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은 이 법이 구글·메타·엑스 등 빅테크 기업의 활동을 제한할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은 실제 고위급 인사의 방한 때도 정보통신망법 개정에도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사라 로저스 미국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이 이달 초 방한 때 우리 정부에 "이 법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압박은 확대, 협의는 공전…5월까지 핵잠 협의 안 열리면 사업 차질 우려

미국이 핵잠 및 원자력 협력을 위한 범정부 대표단을 제대로 꾸렸는지도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외교부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유관부처가 참여하는 대표단을 꾸린 지 오래다. 임갑수 한미 원자력협력 정부대표가 지난 3월 미국을 찾았으나 이후에도 협의 개시 일정은 잡히지 않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5월까지 한미 간 핵잠 및 원자력 협력 관련 협의가 열리지 않으면 핵잠 도입 사업에 상당한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오는 11월에 대통령 임기 중간에 진행돼 '중간선거'로 불리는 상·하원 선거를 치르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공화당이 이기기 힘든 여건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이행 동력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워싱턴에는 한국이 핵잠을 보유하고 한국의 원자력 에너지 활용 권한이 넓어지면 핵무기 보유를 시도할 것이라는 비판적 여론이 있기 때문에, 중간선거로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동력이 상실되면 워싱턴을 상대로 한 정부의 외교 활동의 제약이 커질 수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이 경제와 안보를 연계해 압박하는 전략이 뚜렷해졌다"며 "쿠팡 사안을 핵잠 협의와 연결하는 것도 관세와 안보 협상을 연계했던 지난해와 유사한 방식의 레버리지 활용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핵잠과 원자력 협정은 모두 민감한 사안이지만 이미 정상 간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진 만큼 동력이 있을 때 속도를 내야 한다"며 "중간선거 이후로 지연되면 협상 여건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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