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우리가 외면한 죽음

서재준 외교안보부장

(서울=뉴스1) 서재준 외교안보부장 = 조세이 탄광(장생 탄광)에서 사람이 죽었다. 84년 전 수몰된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과 두 달 보름 전, 2월의 이야기다.

'빅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대만인 잠수부 웨이 수 씨는 지난 2월 조세이 탄광 잠수 수색에 자원했다.

이 수색은 1942년 2월 붕괴된 해저 탄광에 매몰된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 136명과 47명의 일본인 관리자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것으로, 한일의 민간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관계 개선을 추진해 온 한일은 올해 1월 한국이 원하는 '과거사 협력 사안'으로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 및 유전자(DNA) 감정을 공동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민간 협력 사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난 1월 양국의 합의 후에도 한일의 구체적 계획은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

그사이 대만, 핀란드, 태국, 인도네시아의 민간 잠수부가 조세이 탄광에 모였다. 수색 작업을 도와달라는 일본 잠수부의 요청을 받고 흔쾌히 응한 이들이다.

지난 2월 5일 이들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웨이 수 씨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왔다"라고 말했다. 침수·매몰된 무거운 어둠 속 지하 갱도, 정확한 구조를 알지 못하는 칠흑의 해저로 가는 것은 잠수부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 있다는 데도, 그들은 수색을 자원했다.

2월 6일에 이뤄진 첫 잠수에서 이들 '국제 잠수단'은 희생자의 유골, 특히 두개골을 찾았다. 2024년 가을에 수색 작업이 개시된 후 두 번째로 발견된 두개골이었다. 현장에 모인 한국인 강제징용 유가족과 일본인 관리자들의 유가족 모두 '이 유골이 내 가족'이라며 울고, 웃었다.

그리고 하루 뒤인 2월 7일 웨이 수 씨가 숨졌다. 잠수 도중 발생한 불의의 사고였는데, 즉각적인 응급조치가 이뤄지기 어려운 현장의 상황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웨이 수 씨의 사망에 조의를 표하지 않았다. 그가 대만인이라서, 중국과의 관계를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일까? 일본의 협력을 더 끌어내려면 '불상사'를 크게 다루면 안 되기 때문일까? 그냥 무관심했을까?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를 위해 나서 세상을 떠난 이에게 조의를 표하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를 위한 죽음에 박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라는 요구를 당당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이라도 잠수부 웨이 수 씨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기억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기록한다.

seojiba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