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내민 '호르무즈 청구서'…청해부대 작전 확대 가능성
한·중·일·영·프 콕 짚어 "함정 파견 바라"…'다국적군' 시사
전문가 "한미동맹 차원 아닌 해양 공공재 보호 접근 필요"
- 김예원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5개국에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한국군 투입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수송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사태 안정이 절실하지만, 군 투입이 자칫 '군사적 개입'으로 해석될 경우 한국 선박이 이란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 쉽게 결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당장은 주변국의 대응을 지켜보되, 실제 투입이 이뤄질 경우 '해상교통로 안전'과 '항행의 자유' 보장을 명분으로 한 간접 지원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20년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해협 작전 사례를 참고해 미군 주도의 작전에 직접 관여하기보단 파병 부대의 작전 구역을 확대하는 식으로 외교적 파장을 최소화할 필요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은 많은 국가가 해협의 개방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해 군함을 파견할 것"이라며 다국적군의 투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인위적 제약으로 피해를 보는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과 기타 국가들이 해당 지역으로 함정을 파견하길 바란다"라며 "완전히 지도력을 상실한 국가(이란)에 의해 호르무즈 해협이 더 이상 위협받지 않길 희망한다"고 한국을 비롯한 5개국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유 공급 등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주변국에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요청한 것은 이란 공습 발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작전 환경이 미국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협의 가장 좁은 구간 폭이 약 34㎞에 불과해 대형 군함 전개가 쉽지 않은 데다, 이란이 기뢰와 드론 등 비대칭 전력으로 대응하면서 미국이 대응에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전력 요청 대상에 비동맹국인 중국까지 포함한 것은 이번 해협 봉쇄 사태가 이란과 미국 간 대립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확산할 수 있음을 부각해 다국적군 투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트럼프 명단'에 오른 국가들은 중국을 제외하곤 공식적인 입장 및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주미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15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호르무즈 파병 가능성을 묻는 언론 질의에 "모든 당사국은 안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에너지 공급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라며 원론적 수준의 답변을 했다. 한국 정부는 미 측의 공식 요청이 전달되면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군사 지원 요청을 받을 경우 아덴만 등을 주요 작전 구역으로 삼는 청해부대 투입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과거 한국은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 당시 의료·재건 중심의 비전투 부대를 파견하긴 했지만, 현재는 미국 역시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은 상황이라 이같은 대대적인 파병 가능성은 작다.
청해부대는 해적으로부터 한국 상선을 보호하고 다국적군과 협력해 해상 안전을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해 온 부대로,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부대는 최근 이란 공습 이후 오만 동방 해상으로 이동해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란이 미국 및 이스라엘과 연계된 선박들을 공격하는 정황이 감지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군사적 지원을 단행할 경우 우리 선박이 이란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있어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해외 주둔 중인 한국군이 작전 반경을 넓히는 방안도 언급된다. 2020년 1월 우리 정부는 이란과 미국 간 갈등 상황을 고려해 청해부대의 작전 구역을 기존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약 3.5배 가량 확장, 오만만과 호르무즈 해협, 아라비아만 인근까지 넓혀 4400톤급 왕건함을 투입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이에 대해 우리 군의 독자적 작전 수행임을 강조했으며, 필요한 경우에만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체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와 협력하는 방식을 취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호르무즈 해협 상황을 보면 단순 호송 임무만 맡는다고 해도 우발적 충돌이 전면적 교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라며 "한국이 참여할 경우 이번 투입은 국제 해상 교통로의 안전한 사용을 보장하기 위한 제한적·방어적 성격의 기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임무 성격도 한국 선박 보호, 교민 대피 지원 등으로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언급한 것은 이번 구상이 단순한 동맹 연합이 아닌 호르무즈 이용국들의 부담 분담이라는 성격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한국은 제한적 준비 태세로 상황을 관망하는 한편, 이번 사태를 한미 동맹 차원의 군사 동참이 아니라 국제 해양 공공재 보호, 자국 에너지 안보 수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동의 절차도 또 다른 변수로 제기된다. 지난 2022년 호르무즈 '독자 작전' 때 야권에서는 국회 비준동의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청해부대 파견 연장안에 있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조건에 근거해 국회 동의 없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5개국의 '다국적군' 형식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국회 비준 절차가 필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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