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무인기 정국, 조급한 베팅

외교안보부 노민호  팀장
외교안보부 노민호 팀장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북한이 던진 '무인기 이슈'를 둘러싸고 남북이 최근 성명과 담화를 주고받으며 숨 가쁜 '간접 소통'을 벌였다. 남북 간 공식 대화채널이 끊긴 상황에서 속도감 있는 메시지 교환이 이뤄지면서 우발적 충돌을 막았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곳곳에서 묻어난 '성급함'이 불안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지난해 9월과 이달 4일 한국이 북한 지역에 무인기를 침투시켰다고 주장하며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이에 청와대는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1차장 주재로 NSC 실무조정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통일부도 같은 날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상황 점검에 나섰다.

북한발 리스크에 정부가 기민하게 움직인 것은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른 대응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가안보실도 얘기했지만 '무인기 침투' 자체는 정전협정 위반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북한 측에 반응을 보였어야 했다. 국방부는 총참모부 입장이 나온 날 오후 "우리 군은 해당 무인기를 보유하지 않았으며, 북한이 제시한 시간대에도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이 없다"고 밝히는 한편, 민간 영역에서의 무인기 운용 가능성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북한을 도발하거나 자극할 의도가 없다"며 긴장 완화 의지도 강조했다.

문제는 그다음 대응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날 밤, 민간 무인기 가능성과 관련해 "사실이라면 한반도 평화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라며 군·경 합동조사팀을 구성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사실이라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 대통령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반응한 것은 과도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북한이 지난해 9월 유사한 무인기 사안을 제기하지 않다가 왜 이 시점에 문제를 제기했는지, 그 전략적 의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다.

북한은 이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지 하루 만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내세워 국방부의 "자극할 의도는 없다"는 입장을 "연명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고 평가하며, 한국이 북한의 압박에 사실상 '굴복'한 것처럼 묘사했다. 북한은 이 발언을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도 실었는데, 철저히 계산된 선전용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여정은 또 민간 소행으로 발뺌하면 일종의 '비례 대응'을 하겠다며 위협하기도 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0일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게재하며 "지난 1월 4일 국경 대공 감시 근무를 수행하던 우리 구분대들은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일대 상공에서 북쪽방향으로 이동하는 공중 목표를 포착하고 추적하였으며 우리측 영공 8㎞계선까지 전술적으로 침입시킨 다음 특수한 전자전자산들로 공격하여 개성시 개풍구역 묵산리 101.5고지로부터 1200m 떨어진 지점에 강제추락시켰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추락한 무인기 잔해.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김여정의 담화가 공개된 다음 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무인기 관련 군·경 합동조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북한의 주장, 한국 정부의 해명, 김여정의 압박, 그리고 한국의 추가 조치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주도권이 평양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북한이 자칫 자신들의 대남 압박에 대통령까지 움직였다고 오판할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는 2026년을 '한반도 평화 공존 프로세스'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하며 한국을 협상의 상대로 보기보다는, 관리와 압박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단계로 넘어간 상황이다. 이런 구도에서 한국이 '선의'에 따른 북한의 변화만을 기다리는 것은 '낭만적이고 위험한 접근'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김여정은 13일 통일부가 자신의 담화에 대해 "소통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라고 평가하자, "한심하다",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희망 부푼 여러 개꿈" 등의 표현으로 힐난했다. 동시에 무인기 사태와 관련해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국내적 파장이다. 합동조사 결과 민간단체나 개인이 무인기를 날린 사실이 드러나 처벌로 이어질 경우, 이는 또 다른 ‘남남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북전단금지법이 '김여정 하명법' 논란 끝에 위헌 결정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은 6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휴전 상태에 놓여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전방의 장병들은 혹한 속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정부가 북한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면, 군의 사기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인기를 띄운 주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대응 과정이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무인기보다 더 불안했던 것은 서울의 조급함이었다. 평화는 저자세로 얻어지지 않는다. 원칙과 절제가 있을 때만 대화도 힘을 가진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