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망법'에 어색해진 한미…'팩트시트' 후속 협의에 차질?
美 국무부 이례적 공개 우려 표명에…1월 한미 협의에 영향 줄 가능성
전문가 "입법 사안은 되돌릴 수 없어…韓 '운용의 묘' 필요"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미국이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두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면서 지난해 10월 경주 정상회담 이후 줄곧 분위기가 좋았던 한미관계가 다소 어색해지는 듯한 모습이다. 일각에선 '팩트시트 후속 조치 협의' 등 양국 간 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을 2일 우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30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후 곧바로 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개정안을 승인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라며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부정적 영향', '표현의 자유 약화' 등을 이유로 언급했다. 이에 앞서 세라 로저스 미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개정안이 "한미 간 기술 협력을 위협한다"라며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고의나 중과실로 불법·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해 손해를 입힌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대규모 정보통신망을 운영하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 불법·허위 정보 삭제 등 일정 법적 의무를 부과했는데 이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온라인에서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혐오나 차별 조장 발언 등 유해 콘텐츠를 차단·관리하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며 반대해 왔다. 특히 이른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선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보수 및 우익 계열에 대한 검열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이 법안이 구글·유튜브 등 자국의 빅테크 기업이 운영하는 플랫폼의 운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영향이 특정 성향의 콘텐츠에 집중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DSA법 제정을 주도한 EU 인사 5명을 비자 발급 대상으로 지정하는 등 관련 사안으로 EU와 갈등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번 국무부의 입장 표명이 자국 기업의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피하기 위한 방어적 차원일 수도 있지만, 한국을 향한 '보복 예고'일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는 지난 1일 "해당 법안은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른 사회적 폐해에 대응하고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특정 국가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 측과 필요한 소통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선 미국이 당장 '요구사항'을 밝히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한미 간 불협화음까진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상황에 따라 EU에 이어 한국에도 '구체적인 개선 조치'를 요구하거나 제재 혹은 제한 조치들을 카드로 제시하며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이번에 우려를 표한 내용은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을 담아 한미가 함께 공개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도 명시돼 있어 당장 예정된 한미 간 팩트시트 후속 협의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가 주목된다.
팩트시트엔 '한국과 미국은 망 사용료,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미국 측에서 이번 개정안이 '정상 간 합의 위반'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면, 팩트시트의 핵심 내용인 관세 및 통상 합의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 원자력 협정 개정·조정을 위한 후속 협의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미는 이달 중에 미국 실무단의 방한을 통해 팩트시트 내용 중 핵잠 및 원자력 협정 관련 후속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당장 이 협의에서 미국 측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관련해 공식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 입장에선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디지털 규제와 연계할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상 및 안보 등 분야별 팩트시트 후속 협의에서 문제를 제기하며 압박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미 간 외교 채널 등의 긴밀한 협의뿐만 아니라 향후 '운용의 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언했다. 박 교수는 "입법 사안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운용 과정에서 공정하고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 문제를 제기하는 형식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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