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파병 정리되자 韓 접촉한 러시아…우크라전 '종전'하면 정세 바뀐다
러, '한러 비공개 북핵 협의' 강하게 부인했지만…1.5트랙 접촉 이뤄져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러시아가 한국과 북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 논의를 위한 비공개 만남을 진행했다. 러시아는 관련 사실이 공개된 뒤 이를 부인하면서 한국과의 접촉엔 러시아 측 학계 인사들이 나선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는 북한의 반발을 의식한 외교적 제스처라는 분석이 22일 제기된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우리 외교부의 북핵 관련 당국자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올레그 부르미스트로프 러시아 외무부 북핵담당특임대사 등과 비공개 면담을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러시아가 한국과 북한 문제를 논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북한은 러시아를 도와 파병까지 하면서 한러관계는 사실상 교류가 거의 끊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의 파병 북한군이 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지는 등, 북러 밀착의 상징인 북한군의 파병 국면이 상당 부분 정리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미국이 중재를 하는 우크라전이 끝나면 '외교 정상화'가 필요한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 복원을 위한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러시아 외무부는 21일(현지시간) 마리야 자하로바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관련 보도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러시아엔 '북한 핵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한국 외교부 대표단은 러시아 학계, 특히 에너지·안보센터의 초청으로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접촉이 당국 간 공식적인 만남이 아니며, 북한과 관련한 한러 간의 '내밀한 협의'는 없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 외교부는 "정보가 제한된다"거나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라며 확인도 부정도 하지 않는(NCND) 입장을 취하고 있다. 외교부는 통상적으로 특정 현안에 대해 '공식 확인'이 어려울 때 이같은 입장을 취하곤 한다.
상황을 종합하면 이번 한러 간 접촉은 '1.5 트랙', 즉 반관반민(半官半民) 형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역시 외교 당국이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민간을 개입시켜 '비공식으로 공식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 종종 여는 관례적 방식 중 하나다.
러시아 측의 부인은 북한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북러 간 가장 긴밀한 협력사업인 군사적 교류가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더라도 당장은 양측 모두 서로가 더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이 러시아에 대한 '불신'의 감정을 키우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자하로바 대변인이 한국에서 한러 접촉 관련 보도가 먼저 나온 것에 대해 "서투른 시도이자 조작"이라며 북한과 러시아의 '동반자 관계'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라고 강경하게 비판한 것을 두고 오히려 러시아 역시 이번 접촉이 북한과 연관이 있는 만남이었으며, 그만큼 조심스럽게 진행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이사연구센터장은 "러시아의 이번 부정은 북한을 의식한 것"이라며 "언론 보도에 대해 외무부 성명까지 낸 것은 한러관계에 대한 숨은 메시지도 있는 것으로, 상황이 녹록지는 않지만 (향후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미국 종전 협의는 난항인 상황이다. 그 때문에 당장은 한러관계의 급격한 진전이나 북러관계가 악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향후 러시아의 '태세 전환'을 예상하게 하는 동향이 감지되면서, 우크라전 종전 이후 한반도 주변의 역학관계에도 빠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두 센터장은 "자하로바 대변인의 발언은 역설적인 경우가 많았다. 강하게 부인할수록 사실에 가까운 경우가 잦았다는 것"이라며 "학술적 초청이라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러시아는 만남의 급을 굉장히 따지기 때문에 우리 측 당국자가 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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