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명령 이행 차단'…군 명령거부권, 기준과 방식은 두고 이견 여전

'제복 입은 시민'의 권리 거부권, '명령의 위법성' 어떻게 명시할지가 핵심
"야전에서 상관 명령 판단 쉽지 않다"는 지적도…지난주 국방소위에서 결론 못 내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경내로 진입하려는 계엄군을 붙잡아 막아서고 있다. 2024.12.4/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12·3 비상계엄 이후 군인에게도 '명령 거부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거부권 행사의 기준, 방식을 두고 국회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내부 자문위를 통해 올해 내 합의안을 도출한 후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논의가 지연되며 최종 합의는 내년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30일 제기된다.

'제복 입은 시민'의 권리 거부권, 비상계엄 이후 법제화 추진

'제복 입은 시민'인 군인도 일반 시민처럼 거부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논산훈련소 인분 사건' 등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갖춘 군 내에서 인권 침해 사례가 대두되자 노무현 정부는 2007년 군인은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한다는 내용을 담은 군인복무기본법안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15년 제정된 군인복무기본법엔 원래 '정당한' 명령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군기 저하 우려 등을 이유로 법제화되진 못했다. 이후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의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해병대 대령의 '항명 사건'을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입법 논의가 본격화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군인은 대통령 개인이 아닌 국민에 충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위헌적, 위법적 명령에 대한 거부권 신설을 약속해 왔다. 국방부는 새 정부 출범 후 내란 극복·미래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 산하 헌법 가치 정착 분과위원회(분과위)를 설립하고 법 개정 등을 추진 중이다.

군인은 군인복무기본법 25조에 따라 '명령 복종의 의무'가 있다. 현행법상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런데 군인복무기본법엔 부당하거나 위법한 명령에 대한 예외 사항이 명시돼 있지 않으므로, 법 개정 등 입법 과정을 거쳐 수명자가 명령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이번 거부권 조항 신설 논의의 핵심이다.

분과위는 지난 28일 공개한 군인복무기본법 개정 검토안에서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의 '직무상 명령'을 '직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또 △명령이 헌법 또는 법률에 명백히 위반되는 경우 △명령이 형법 등에 위반되어 범죄가 되는 경우 △직무상 목적 이외의 사적 목적 또는 권한 범위 밖의 사항이 명백한 경우에 한해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명령의 정당성' 판단 기준 놓고 여야 이견…일각에선 "부하에 책임 떠넘기기" 지적도

하지만 '정당한 명령'이라는 표현이 가진 모호함으로 인해 야전에선 오히려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군 조직에서 명령이 하달될 때마다 정당성을 판단하게 되면 지휘 체계가 손상되고 작전 수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의 이견도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해당 법안 개정안과 관련해 지난주 두 차례 열린 법률안심사소위원회(소위)에서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소위 첫날 기존 조항의 '직무상 명령'을 '직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수정하고,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단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여야는 '정당한' 명령이라는 표현은 현장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삭제될 필요성이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 유지를 두고 여야가 팽팽하게 대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는 '정당성'이라는 표현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수용, 최초 상정안 내용에서 '정당한' 부분을 삭제 후 "명령의 '적법성'에 대한 이견이 있을 때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새롭게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수명권자에게 명령의 정당성을 판단하게 하기보단, 그런 명령을 내린 군 지휘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수명 기준에서 '정당성'을 제외하더라도 명령의 위법성을 하급자 판단에 맡기는 것 자체가 '책임 떠넘기기'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며,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군 조직의 기강 확립에 위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거부권 행사 기준과 처벌 범위에 대한 의견 조정이 지지부진하며 올해 말로 예정됐던 법안 개정안 확립은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