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인정에 제재 완화 제안한 트럼프…'비핵화 철회'도 기다리는 北

트럼프, 방한 앞두고 김정은에 대화 손짓 지속
北 원하는 '비핵화 철회'하면 동북아 안보에 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 일본으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10.27. ⓒ AFP=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입맛에 맞춘 대북 메시지를 연일 발신하고 있다.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무기 보유국)라고 부른 데 이어 대북제재 완화 논의도 가능하다고 밝히며 오는 29일 방한을 계기로 김 총비서와의 만남을 성사하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인 27일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한국에 가면 김 총비서와 만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그는 '북한에게 (협상을 위해)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라며 "이는 협상하기에 꽤 큰 사안"이라고 말했다. 제재 완화 및 폐기를 협상 카드로 삼아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각국의 독자제재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위한 것으로, 북한과의 무역은 물론 투자 및 인도지원 등도 사실상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다.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처음으로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채택(1695호)됐으며, 2017년 12월에 발표된 11번째 결의안인 2397호가 안보리 차원의 마지막 대북제재 결의다.

북한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제재 완화 문제를 강력하게 요구한 바 있다. 실제 양측은 일정한 수준의 합의 직전까지 간 바 있다.

지난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의 실무진은 북한이 북핵의 산실인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주요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작 두 정상이 만났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돌발적으로 '영변 핵시설 폐기+알파'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북한은 회담 결렬 이튿날 새벽 리용호 당시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협상의 주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11건 중, 2016~2017년 채택된 5건에 포함된 '민수경제, 인민생활' 관련 항목을 먼저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에 대한 각종 무역 통제와 관련된 내용일 것으로 추정됐다. 북한산 광물 자원 수입 금지, 북한 은행의 해외지점 폐쇄 등의 내용이 담긴 결의 2270호를 비롯해, 정제유 수입 상한선을 제한한 결의 2397호 등은 북한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제제 결의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News1 DB

그 때문에 제재 완화는 북한의 입장에선 궁극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기는 하다. 다만 북한이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 후 '자력갱생'을 외치며 6년여의 시간을 버텼고, 최근엔 러시아·중국과의 밀착을 통해 경제 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하고 있어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발언만으로 당장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지난해 4월 유엔 안보리에서 각국의 대북제재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관련한 보고서를 만드는 '전문가 패널'을 해체하기도 했다. 전문가 패널은 관례적으로 1년 단위로 임기를 연장해 왔는데, 작년엔 러시아가 반대 의사를 드러내 임기 연장이 무산된 것이다.

아울러 러시아는 파병 북한군을 받고 이에 대해 반대급부를 제공했고, 최근엔 북한의 노동자 파견을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대북제재 위반 사항으로, 러시아가 사실상 대북제재 무효화 행보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적으로는 대북 제안의 갯수를 늘리고 있긴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선 6년 전과 달라진 정세와 입지에 따라 당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이 획기적으로 보이진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결국 북한이 가장 원하는 협상 카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라는 정책 목표를 폐기한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 총비서는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면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하면서도 "제재 풀기에 집착해 적수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제재의 완화와 핵 능력을 바꾸는 과거의 협상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하지만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손짓을 하는 상황을 북한도 미국과의 접촉면을 만드는 하나의 기회로 볼 소지는 있다. 구체적인 협상은 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교류'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제안'을 끌어낸다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김정은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에 파키스탄, 인도처럼 기존의 제재가 해제되면서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접근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또한 제재가 있는 상황에선 경제 발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풀어야 하는 것이다. 트럼프도 그걸 알고 있으니, 일종의 미끼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