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수 인사'를 '돌려막기 인사'로 막은 외교부[한반도 GPS]

''李 대통령 연수원 동기' 차지훈 주유엔대사 임명에 기대 보단 우려
文정부 때 유엔 차석대사 5년 만에 재임명해 보좌 맡겨…'강등 인사' 눈초리도

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

차지훈 신임 주유엔대사가 19일(현지시간)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 제공)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다자외교의 꽃'이라 불리는 유엔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할 주유엔 한국대표부 대사 인사와 관련한 후폭풍이 꽤 센 듯합니다. 외교관 경력이 없는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 출신 변호사가 대사직에 임명된 뒤 외교가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신임 주유엔대사로 임명된 차지훈 변호사는 지난 18일 현지에 부임해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차 대사는 전문 외교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직접 낙점하는 '특임대사'에 해당합니다. 특임대사는 통상 대통령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중량급 인사들이 후보군에 오릅니다. '4강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중대한 국익과 직결되는 국가에 특임대사가 임명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유엔대사 역시 중요한 자리입니다. 북핵, 북한인권 문제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고, 이에 대해 유관국 및 주요국과의 밀접한 소통이 가능한 사교성과 정보력도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그간 주유엔대사직엔 대체로 특임대사가 아닌 전문 외교관이 임명돼 왔습니다. 주재국에 언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권위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정치력이 중요한 특임대사와 달리, 광폭의 외교 활동이 요구되는 주유엔대사직엔 경험과 전문성을 모두 갖춘 전문 외교관이 더 적합하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유엔의 관행에 대해서도 밝아야 하는데, 각국의 외교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그들만의 언어'를 이해하거나, '유사 입장국'끼리 진행하는 '티타임'에 끼기 위해서는 오랜 노하우와 인맥을 빠르게 전수할 수 있는 전문 외교관이 낫다는 한 외교관의 전언도 있었습니다.

주유엔대사직은 '극악의 업무량'으로도 유명합니다. 많은 주목을 받지 않거나, 중대한 국익과 직결되지 않는 일이라도 상대국과의 관계, 그리고 한국의 외교 위상을 고려해 참여해야 하는 사안이 부지기수입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주요국의 주유엔대사 중엔 20~30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도 꽤 있다"라며 "주유엔대사는 '빛이 나지 않은 일을 쉴 틈 없이 해야 하는 자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주유엔대사 경력을 갖춘 외교관이 외교 수장이 된 사례가 꽤 됩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019년부터 약 3년간 주유엔대사로 근무했고,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도 2016년부터 약 3년간 주유엔대사로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외교가의 인식 혹은 관례가 꼭 정답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외교 무대와 접점이 없는 차 대사의 임명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차 대사는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입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일 때 그의 변호인단으로 합류해 '사법 리스크' 중 하나였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끌어낸 바 있습니다.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배종인 외교부 기획조정실장이 지난 2022년 11월 주유엔 한국대표부 차석대사로 활동할 때의 모습.(유튜브 화면 캡처)

외교부는 차 대사의 임명에 대한 비판에 "차 대사는 국제중재, 국제금융 등 국제 이슈에 대한 이해가 깊고 중재·협상 경험이 많은 법조인 출신"이라며 "고도의 국제법 지식과 노련한 협상력을 요하는 유엔 무대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다만 "특임공관장을 포함한 재외공관장 인사 관련 사항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외교부가 답변하기 어려움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라면서 이번 인사에 대한 평가에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해명에 이어 외교부는 지난 2020년 11월부터 2년 반 동안 주유엔 한국대표부 차석대사를 지냈던 배종인 기획조정실장을 다시 주유엔 차석대사에 임명했습니다. 배 차석대사는 5년 만에 같은 자리에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차 대사의 부족한 외교 경험을 채우고 대사의 막중한 임무를 적절하게 보좌하기엔 최적의 인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교부 내에서는 실장이 국장급 자리에 임명된 '강등 인사'라는 비판과 함께 '말년 병장이 다시 이등병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나옵니다. 배 차석대사의 정년이 3년밖에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건 대사의 일과 차석대사의 일은 엄연히 구분돼 있다는 것입니다. 차 대사가 본연의 업무를 잘 수행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다른 나라들이 어떤 시선을 보낼지 걱정도 됩니다. 정부가 유엔에서의 한국의 입지를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 건 아닌지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