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인 무더기 구금' 봉합 수순…'한미동맹 뒤통수' 과제는 남아

대미 투자·동맹 기여 압박하며 韓 근로자 수갑 채운 美 트럼프
전문가들, 정부 '냉정한 대응' 주문…"제도 개선 등 성과 내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ICE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금지) 2025.9.6/뉴스1

(서울=뉴스1) 노민호 정윤영 기자 = 미국의 이른바 '한국인 무더기 구금' 사태가 한미 간 석방 교섭 마무리로 일단 '봉합' 수순에 돌입했지만, '한미동맹 뒤통수' 논란은 과제로 남았다는 분석이다.

7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최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300여 명이 현지 이민당국에 체포된 것과 관련해 한미 간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다.

정부는 미국 내 행정적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우리 국민들을 전세기로 일괄 귀국시킨다는 계획이다.

또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게 관련 부처와 기업 간 공조 아래 비자 체계 점검과 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일 석방 절차 마무리를 위해, 미국 워싱턴DC로 향한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뒤, 도중에 이석해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ICE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금지) 2025.9.6/뉴스1
대미 투자 압박하면서 韓 근로자 수갑 채운 트럼프…최소한의 동맹국 배려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클 전망이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미국 이민당국의 단속이 벌어진 장소는 '한미 제조업 협력'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곳으로, 우리 근로자 300여 명이 사실상 불법 이민자 취급을 받았다는 것은 석방만으로 치유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우리 국민들이 수갑을 차고 버스에 태워져 이송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버젓이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성과인 양 다뤘는데, 이는 한미동맹 차원의 고려가 있었다고도 볼 수 없다. 현지 수용소는 또 냉방이 잘 안되고 곰팡이가 스는 등 미국 내에서도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체포 작전 직후 언론에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ICE는 제 역할을 했을 뿐이라며, 성급하게 '불법 체류자'로 규정했다. '향후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대처와 그 과정에서 한국과 소통할 것'과 같은 외교적 수사를 통한 최소한의 동맹국 배려는 없었다.

이번 사태가 한미동맹 차원에서 더욱 뼈아픈 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이상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뒤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한국 등 동맹국에 대미 투자를 독려하면서, 뒤로는 한국인을 대거 구금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였는데,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우리 정부의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전문가들 "뒤통수 맞은 韓…美 재발 방지 약속 및 실질적 제도 개선 등 성과 내야"

미국 측의 재발 방지 약속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후속조치가 없다면 국내에선 '반미 감정'이 심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인 취업 활동이 금지되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비(非)이민 비자인 '단기 상용' B-1 비자를 통해 건설 현장에 한국 인력이 투입되는 '관례'가 반복되게 하는 것보다,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 쿼터, 즉 'E-4 비자' 신설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는다.

우리 정부는 2006~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미국 측에 E-4 비자 신설을 요구했지만, 관철되진 않았다. 외교부는 2012년 이래 E-4 비자를 신설하는 '한국 동반자법'(PWKA) 입법을 위해 미 정부·의회를 상대로 아웃리치를 계속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련 법안은 지난 2011년부터 매 회기 때마다 발의됐지만 아직 계류 중인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E-4 비자 입법이 당장 어렵다면, 한미 외교당국 간 협의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 행정명령' 등을 통한 우회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우리가 지금 미국에 가서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다. 공장 건설 과정에서 당장 전문성이 있는 우리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E-4 비자 추진이 계속해서 불발되고 있는데 공장 건설 기간 등 '특별 기간'만이라도 비자를 면제받거나 근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행정명령이 있어야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경제 등의 분야에서 한미 간 협력이 원활해질 것이다. 이번에 한국 입장에선 미국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말했다.

홍석훈 국립창원대 국제학과 교수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대대적 단속은 쇼잉(보여주기식) 성격도 있다. 앞으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등을 고려한다면 많은 기술 인력이 한국에서 급파되는 일이 많을 텐데 모순되는 현재 상황을 안고 갈 수는 없다"라며 "정부는 이번에 미국에 철저히 따져 물어서 재발 방지 및 실질적인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