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징용 강제성' 인정 또 거부…과거사에 무성의한 '이중적 태도' 여전
올해도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한일 정상 밀착과는 '딴판'
'과거사와 현안 별개로' 한국의 '양보'에도…日 호응은 '난망'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셔틀외교' 복원 등 한일관계 개선 행보는 이어지지만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이 한일 간 민감한 현안을 건드리지 않고 '양보'하고 있음에도 일본의 이중적 태도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4일 제기된다.
일본은 오는 13일 니가타현 사도시에서 단독으로 '사도광산 추도식'을 열 예정이다. 한일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공동개최를 논의했으나 일본 측이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올해도 추도식이 '반쪽짜리' 행사로 파행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올해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 측에 '불참' 의사를 통보했다고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일본 측의 추도사가 문제가 됐다. 일본은 추도사에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 노동자를 징용한 것이 '강제성'이 있었다는 표현을 넣으라는 정부의 요청을 끝내 거부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한일이 같은 지점에서 협의를 진전시키지 못한 셈이다.
추도식은 지난해 7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한국이 이를 수용하되, 사도광산 유적지에 강제징용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반영할 것을 요구한 한국의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 일본이 약속한 '후속 조치' 중 하나다. 추도식은 민간 개최 형식을 띄지만, 한일 당국 간 협의를 하도록 양측이 합의한 바 있다.
그럼에도 2년 연속으로 추도식이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 작년은 우리 측 유가족과 정부 관계자가 사도광산 현지에 들어가 추도식 준비를 하는 도중에 한일 당국 간 협의가 최종 결렬돼 추도식 하루 직전 정부가 불참을 결정하기도 했다.
올해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이 대통령이 과거사와 협력 사안을 분리해 대응하겠다면서 한일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일본이 적극 호응하면서 추도식 역시 정상 개최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일본은 작년과 같은 문제로 추도식을 또 파행시키며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일관계 개선이 중요하다면서 협력이 필요한 현안과 과거사 문제를 연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일본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지난달 23~24일엔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해 이시바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 대통령이 취임 후 주요국 정상과의 첫 양자회담을 위해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일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을 위한 포석이자, 미국을 상대로 한 관세 및 안보 협상, 대북 정책 추진에 있어 한일 간 협력 지점을 찾는다는 의도도 있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방일 직전인 지난달 19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 '과거 한일 정부 간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피력하며, 참의원 선거 참패로 정치적 입지가 불안해졌던 이시바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한국의 정권이 바뀌면 과거 합의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일본 조야의 우려를 불식하는 제스처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번엔 사도광산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양보'가 필요하고, 실제 관련 조치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듯한 일본의 이번 결정을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의 뒤통수를 치는 조치라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문제는 당장 일본이 과거사 사안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이시바 총리의 불안정한 정치적 입지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경화'가 두드러진 일본 여론을 의식해 한국에게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변화된 태도를 보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에서 17년 만에 양국 정상의 합의 내용을 담은 '공동언론발표문' 채택에 동의하고, 여기에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담았지만, 곧바로 이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며 신뢰도 문제도 제기될 판이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듯한 상황이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한일, 한미일 협력을 통해 외교·안보 현안의 실익을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일본에게 과거사 문제를 고강도로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은 균형을 더 무너뜨리는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인 올해가 가기 전에 유의미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이 대통령의 대일 외교가 '일방적 구애'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약 열흘 뒤인 사도광산 행사 당일에 즈음해 여론이 크게 악화하면 한미일 밀착의 고리도 느슨해져 지난 3일 중국의 '전승절'(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을 계기로 한 북한·중국·러시아의 밀착에 대응하는 한미일 밀착 외교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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