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안심시킨 李 대통령 발언…"과거사 합의 안 깬다" 전략적 메시지

위안부 합의·강제징용 3자 배상안 합의 유지…정상회담 전 우호적 제스처
관세·안보 압박 강화하는 트럼프 2기 공동 대응 '맞손'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공원 소녀상에 시민이 걸어준 꽃목걸이가 걸려있다.2023.8.15/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일본 방문을 앞두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2023년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에 대해 "국가 간 약속으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이 예민하게 나올 수 있다는 일본의 우려를 불식하며 대립보다는 합의 이행을 통해 과거사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시그널을 낸 것으로 해석된다. 오는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용외교 기조를 재확인한 행보로도 평가된다.

일본의 불안함 덮었다…이시바에 '힘 실어주기'로 한일 밀착

이 대통령은 21일 공개된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가로서 약속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일의 2015년 위안부 합의와 2023년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 정부가 아베 신조 정권과 체결한 합의로, 일본 정부의 10억 엔(약 94억 원) 출연과 한국의 피해자 지원 재단(화해·치유재단) 설립을 골자로 한다. 2023년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은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해법으로, 한일 민간기업의 자발적 기여에 따라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일본 피고 기업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한 합의다.

이번 발언은 한국의 정권 교체 시 정부 간 합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일본 여론의 인식을 불식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선 문재인 정부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되돌리는 메시지와 움직임이 나온 이후 한국에 대한 불신 여론이 조성된 바 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은 "국제적 약속을 존중하겠다는 발언은 일본 사회에서 흔히 제기되는 '골 포스트론'(한국이 합의 후에도 일본에 요구의 수준을 계속 높인다는 불신)을 불식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반일 기조 우려를 선제적으로 차단해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합의를 지키되, 과거사 문제를 덮지 않고 현실적 틀 안에서 관리한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일단 한일 합의와 소통의 틀을 깨지는 않는다는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일본 언론들도 이 대통령이 합의를 재확인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관계 안정화의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이번 메시지는 입지가 불안한 이시바 총리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중의원(하원) 선거에 이어 지난달 참의원(상원)에서 패한 이시바 총리에 대한 자민당 내 퇴진 압박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시바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라며 진보적으로 평가되는 자신의 외교 노선의 정당성을 부각하는 등 퇴진 압박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화해·치유재단 이사를 지낸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시바 총리는 역사 문제에서 비교적 전향적 인식을 가진 지도자"라며 "이번 메시지는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효과가 있다. 정상회담에서 '실질적 합의'가 도출된다면 양국 모두에게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뉴스1 ⓒ News1
한일 밀착은 트럼프 공동 대응에도 효과…안보 협상 우군 다지기

한일의 밀착은 강도 높은 관세와 안보 압박을 제기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공동 대응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한국의 입장에선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에서 일본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대미 협상력 제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잘 넘긴 한일은 곧 국방비 인상과 국내 주둔군의 역할 변화를 논의하는 안보 협상을 앞두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이라는 '우군'을 확보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 임한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한미일 공조 강화를 위한 기반 마련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원덕 교수는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갈등을 재점화하면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협상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일본과 원만한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에 가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라고 짚었다.

손열 원장도 "안보와 경제 협력은 기능적으로 관리하고, 역사 문제는 별도 트랙에서 지속 논의하는 투 트랙 접근이 필요하다"며 "이번 발언은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전략적 협력을 병행하겠다는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