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고비 넘어도 계속될 트럼프식 외교의 뉴노멀…'결례의 압박'

외교적 결례 일상화된 미국의 협상 방식 두드러져
관세 넘어 한미 정상회담 돌파해야 '실용외교' 안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2025.07.23. ⓒ AFP=뉴스1 ⓒ News1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미국의 관세 협상에서 두드러진 모습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한국에 대한 고강도 압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방식은 트럼프 행정부의 특유의 방식으로 굳어져, 관세 협상의 고비를 넘어도 앞으로 3년 반 동안 계속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미는 당초 25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에서 '2+2(재무·통상 수장) 장관급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미국이 제시한 상호관세 부과 유예 시한(8월 1일)이 임박한 가운데 사실상 '최종 담판'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미국은 돌연 어깃장을 놨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긴급 사정'으로 회담은 연기한 것인데,갑작스런 미국 측의 통보에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준비하던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륙 한 시간 전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일 방미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카운터파트인 마코 루비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을 대면하지 못했다. 위 실장은 21일 약속된 시간에 백악관을 찾았으나, 면담 직전 루비오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 호출'을 이유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위 실장은 대기했으나, 루비오 장관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의가 길어져 면담에 참석하지 못해 전화 통화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루비오 장관이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 'X'에 베아테 마이늘-라이징어 오스트리아 외무장관과의 만남이나 시리아 외무장관과 만난 사진을 올리면서 위 실장이 '패싱' 당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왔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도 24일(현지시간) CNBC와 인터뷰에서 "한국도 유럽처럼 정말, 정말 무역 합의를 원한다. 그리고 일본과의 합의를 읽으면서 한국에서 나온 욕설(expletives)을 들을 수 있었다"면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다소 직설적인 발언을 내놨다. 협상을 앞둔 한국에게 '일본을 따라 해야 할 것'이라는 면박성 메시지를 준 셈이다.

이러한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언행은 통상적인 수준에선 외교적 결례에 해당한다. 특히 긴밀한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각국은 발언 수위에 신중을 가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외교적 관례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술 더 뜨듯이 "난 다른 나라도 (일본처럼) 돈을 내고 관세를 낮추는 걸 허용하겠다"라고 발언하며 '결례의 압박'에 방점을 찍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 도착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 회담 중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망신 주기' 외교 지속…'정치적 승리' 부각 위한 트럼프식 압박 전술

통산 협상을 '미국에 돈을 내는 행위'로 규정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일련의 압박 전략이 결국 '정치적 승리'를 중시하는 그의 기조에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일본이 관세 압박에 '버티기' 협상을 전개하자 '일본이 버릇이 나쁘다'는 취지로 말하거나, 관세를 최대 30~35%까지 '징벌적으로' 높일 수 있음을 언급하는 등 기존의 국제사회의 룰과 관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위해 백악관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야전형 옷차림을 보고 "오늘 잘 차려입었네"라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했다. 아무리 첨예한 협상이 전개돼도 공개석상에선 동맹국을 '대우'하는 외교를 선보인 과거 대통령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지난 9일엔 영어가 공식 언어인 라이베리아의 조지프 보아카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그에게 "영어를 잘한다"라고 칭찬하거나 이달 초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등 연이어 '외교 결례' 논란의 대상이 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유지돼 온 외교적 규범 등을 무시하는 측면이 강하다"라며 "워낙 좌충우돌하고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펼치다 보니 외교적 결례라는 각종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국은 이번 관세 협상에 이어 '동맹의 현대화'나 국방비 인상 등 미국과의 안보 협상도 전개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이재명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도 큰 과제 중 하나다. 결국 '실용외교'의 안착과 성공을 위해 남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 '결례 외교'가 넘어야 할 큰 산일 수밖에 없다.

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몰아치기는 이번 상호관세 사안이 첫 번째 파도다. 다음 단계는 환율 문제(약달러)를 가지고 시비를 걸고, 아직 본격화하지 않은 중국 견제에 대한 동참 요구도 강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실용외교의 공간이 매우 좁은 상황이다. 미중 간에서 실용적 이익을 추구하는 게 상당히 제한되는 부분이 있다"라며 "이럴 때는 미중을 보는 게 아닌 문재인 정부 때 시도했던 신남방정책처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및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유럽 국가, 일본과 같은 유사입장국과 연대를 강화해 실용성을 높여갈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