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치 바빠지면 과거사 버리는 일본…'실용외교' 과제 안겨준 유네스코 표결

'약속 미이행' 日 반대에 유네스코 '군함도 이행' 논의 불발
전문가들 "'실익-과거사' 상충된 두 축 조율 과제로"

한일관계ⓒ News1 DB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의 '군함도'(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강제동원 역사 왜곡 문제를 재논의하려던 한국의 시도가 무산되면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다.

'약속 미이행' 日 반대로 유네스코 '군함도 논의' 불발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47차 회의에서 일본의 군함도 관련 후속조치 이행 상황을 위원회가 평가하자는 한국의 제안이 수용되지 않았다.

일본은 군함도 문제를 이젠 유네스코 차원이 아닌 한일 양국 간 다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에 표결 절차까지 갔으나 한국은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초유의 한일 과거사 표결에서 한국이 패배함에 따라, 향후 유네스코 차원에서는 일본의 미진한 '군함도 약속' 이행을 문제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은 지난 2015년 7월 군함도 등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 시설 23곳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때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10년째 당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고, 이젠 오히려 '할 만큼 했다'는 식으로 맞서는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는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정상 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하자는 데 뜻을 같이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협력 사안은 별개로 다룬다는 '투 트랙' 기조를 대일 외교의 기본 방침으로 세우고 있다. 이에 외교가에선 '대일 강경' 기조가 점쳐졌던 이 대통령이 일본을 '자극'하기보단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한일관계를 먼저 추동한 것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양국 간에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제3자 변제안)을 우리가 제시했지만 일본이 결국 '호응'하지 않으면서 국내에선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지율 하락 등 내치 사안 있을 때 '과거사' 버리는 日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일본이 총리의 지지율 하락, 선거 등 내치에 중요 사안 발생할 때마다 과거사 문제를 버리는 듯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비둘기파'로 평가되는 이시바 총리는 오는 20일 참의원(상원) 선거를 치른다. 이번 선거는 이시바 내각의 중간 평가 성격이 강하다. 이시바 총리는 이번 선고 목표로 과반 확보를 내세웠는데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사퇴 압박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는 크게 떨어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본 내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고, 이번 선거도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일련의 상황에서 이번에 이시바 정부가 과거사 사안에 대해 '강경 태도'를 고수한 것도 결국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일부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실익'과 '과거사'라는 상충된 두 축을 어떻게 일본과 조율하고,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이재명 정부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AFP=뉴스1
전문가들 "'실익-과거사' 상충된 두 축 조율 과제로"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이번 군함도 문제처럼 단기 승부가 아니다.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원칙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실익을 잃지 않으려면 양자 외교 채널에서 실질적인 압박 수단을 계속 고민해야 하고 역사 문제를 지속적으로 추궁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선거 국면이라 지금은 적극적인 대응이 어렵겠지만, 참의원 선거 이후 양자 협의 채널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거사 문제를 풀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실익을 위해 한일 협력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지만, 과거사 문제를 등한시하면 장기적으로 한일관계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이번에 국제사회에서 의제로 다루지 못한 만큼 양자 간 협의에서라도 일본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실질적 보완 조치를 계속 요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일본 정치 지형이 바뀌면 역사 문제 대응 기조도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