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땅 1.4㎞ 앞 애기봉…남북 확성기 멎었지만 긴장감 여전[르포]

남측엔 스타벅스, 북측엔 철조망 대비
북한의 선전마을엔 작업자 모습 보여

2일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땅의 모습./뉴스1 ⓒ News1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북한 황해남도 개풍군과 불과 1.4㎞ 떨어진 경기도 김포시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엔 글로벌 브랜드인 스타벅스 지점이 입점해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한 땅을 맨눈으로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장소이자, 스타벅스 매장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2일 해병대 2사단 청룡부대 견학 후 찾은 애기봉 전망대에는 평일임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출입 신청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제한 구역이지만, 현대식 공원과 전망대는 이곳이 남북 접경지라는 사실을 흐리게 만든다.

자욱한 안개가 낀 한강 하구 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은 분위기가 달랐다. 북한이 보여주기 용도로 만든 '해물 선전마을'을 제외하면 개발이 거의 되지 않은 채 황량한 모습 그대로였다. 망원경 너머로 낡은 시설물과 공터에서 무언가 작업 중인 주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포착됐다.

현장에 동행한 해병대 관계자는 "북한 땅의 산 뒤에는 방사포와 자주포 등 포병부대들이 다수 있고, 실사격 훈련을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훈련은 계속하고 있다"라며 "북한 지역에선 주민들의 이동을 막기 위한 단절 조치도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의 해물 선전마을./뉴스1 ⓒ News1

남북한의 거리가 가까운 한강 중립 수역에선 지난해 북한 주민 1명이 물이 빠진 갯벌을 걸어 귀순하는 일도 있었다. 2020년에도 탈북민 김 모 씨가 중립수역을 헤엄쳐 건넌 뒤 귀순했다. 이들 지역은 대체로 우리측 지역의 고도가 북측보다 높아 대북 감시에 유리하다고 한다.

망원경을 들고 좀 더 들여다보니 북한 측 산 능선에 감시초소가 일정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고, 철조망도 곳곳에 이어져 있었다. 고운 흙을 깔아 동선을 파악하기 위한 '흔적로'로 펼쳐져 있었다. 현재는 주로 군인들이 이 길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북측 지역엔 여전히 대남 확성기가 설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유화 제스처가 이어지면서 확성기 방송이 멈춘 게 이 지역의 가장 뚜렷한 변화다.

애기봉은 병자호란 당시 평안감사와 각별한 애정을 나눴던 기생 '애기'의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다. 6·25전쟁 때는 해병대가 큰 전투를 치른 격전지이기도 하다.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애기의 한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라며 애기봉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친필 비석을 세웠다.

기동시범 중인 해병대 청룡부대 KAAV.(해병대 제공)

애기봉을 둘러본 취재진은 인근 해병대 청룡부대 한국형상륙돌격장갑차(KAAV) 부대를 방문했다. 우리 군에서 해병대만이 운용 중인 KAAV는 약 20명의 병력을 태우고 해상에서도 7시간 기동할 수 있는 상륙작전의 핵심 장비다.

취재진을 태운 KAAV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움직였다. 답답한 실내 공간과 불편한 좌석, 매캐한 연기와 거친 진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싸워 이기는 해병대 정신을 대변하는 듯했다.

순간 전쟁이 발발하면 이 장갑차가 애기봉에서 본 바로 그 북한 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쪽엔 스타벅스가, 반대쪽엔 철조망이 있는 분단의 상징적인 지역에서, 6·25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애기가 아직 평안감사를 기다리는 그곳에서.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