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해진 외교, 차분해진 남북…군 개혁은 이제 시작

[이재명정부 한달] 정상외교 복원하며 한국에 대한 '신뢰' 회복
'긴장 완화' 대북 조치 효과…민간인 국방장관으로 군 개혁 시동

이재명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허고운 유민주 기자 =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함께 비상계엄으로 흐려진 국제사회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과제를 맞았다. 지난 한 달의 외교적 성과는 신뢰 회복이라는 점에서는 '합격점'을 받았다는 평가다. 보다 고차원적인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은 여전하지만, 일단 한미, 한일, 한중 등 주요국 정상과의 소통을 빠르게 해내면서 국제사회에 '한국이 돌아왔다'라는 인상을 주기 충분한 행보였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역시 지난 정부 때 최고조였던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고 있다. 민간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비칠 수 있는 대북전단 살포 통제 조치를 비교적 원활하게 풀어가고 있으며,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을 중지시킨 것은 우발적 충돌 우려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조치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비상계엄으로 인해 드러난 군의 적폐 및 잘못된 관행을 개혁하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의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파격적인 첫발'을 뗐지만, 군 내부에서도 역량을 인정받는 인물이 전면에 나서며 '잡음'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다.

이재명(가운데)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뉴스1 ⓒ News1
美 압박 있지만 요구도 선명, '진짜 외교' 복원…한일관계는 '굿 스타트'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약 일주일 만에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 정상과의 첫 전화 통화를 무난하게 마치며 '실용외교'의 시작을 알렸다.

선거 기간 '친중' 공세를 받았던 이 대통령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 보다는 '케미'를 맞추는 소통을 진행했다. 관세와 안보 청구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양국 정상이 주요 7개국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첫 만남을 조율하는 등 미국이 한국을 '정상적 대화 상대'로 여기는 외교적 여건은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미국은 우리 측에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전달하거나 고위급 소통 의지를 피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압박은 강하나 소통도 가능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한 '진짜 외교'도 정상화됐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일관계 관리는 실용외교 기조의 장점이 가장 두드러진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본 조야에선 강성으로 분류되는 이 대통령이 집권하면 과거사 문제에 있어 원칙을 중시하면서 일본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하는 기조를 보이면서 일본도 적극적으로 박자를 맞춰 나왔다.

지지율이 낮은 이시바 총리는 오는 20일 진행될 참의원 선거에서 낙제점을 받을 경우 퇴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지만, 외교가와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가 주도적으로 한일관계를 관리한 것을 일본이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관세와 안보라는 두 가지 무기를 든 미국의 압박이 한일에 공통적으로 적용돼 협력할 공간이 넓어졌다는 것도 당장의 한일관계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두드러진 반중 정서로 멀어졌던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통화에서 인적·문화 교류 강화와 경제 등 실질협력 분야에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협력하자는데 합의했다. 오는 11월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시 주석이 방한하면 한중 간 협력의 폭은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방산 고객'인 호주와 아랍에미리트(UAE), 주요 경제 협력 파트너이자 한류 문화 수요국인 인도네시아 등과도 취임 한 달 이내에 소통을 완료하면서 외교적 실익을 염두에 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4일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을 방문해 김명수 합참의장 등 군 지휘부로부터 군사대비태세 보고를 받은 뒤 각군 지휘관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4/뉴스1
민간인 국방장관으로 군 개혁 시동…장성 인사서 방향성 확인된다

이재명 정부 출범의 주요 배경엔 군을 동원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이 있었다. 새 정부의 '중책' 중 하나로 군 개혁이 부상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이유다. 비상계엄에 직접 관여한 각 군의 사령관 외에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된 군 수뇌부가 여전히 군의 주요 보직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군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군 개혁의 출발점에 선 인물은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다. 그는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64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인 출신의 국방부 장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5선 국회의원인 안 후보자는 의원 생활의 대부분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보내며 국방 사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군 수뇌부와도 두터운 인맥을 쌓아왔다. 이 때문에 개혁 초기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된다.

안 후보자는 지난달 27일 기자들과 만나 "척결 없이 소독약만 뿌리고 봉합해서 가면 곪아 터지는 부분이 생긴다. 도려낼 부분은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다"라고 말해 임기 초반부터 강력한 군 개혁을 단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구체적인 개혁안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개혁의 기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첫 장성 인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에 가담한 인물을 배제하면서도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확보할 수 있는 파격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육사 출신의 고위직 임명을 배제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육사 출신으로 3성 장군을 지낸 이두희 전 미사일전략사령부 사령관을 국방차관에 임명하며 '출신 성분보다는 능력과 개혁 의지'를 중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 우리 측 초소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2025.6.12/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대화까진 갈 길 멀지만…'관리 가능한' 남북관계 분위기 조성

이재명 정부는 남북관계에 있어 고조된 긴장을 완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여러 조치를 시행했다.

통일부는 지난달 9일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지난 정부의 스탠스를 180도 뒤집은 것으로, 북한에게 관계 개선의 의지를 표출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정부는 메시지 표출에 그치지 않고 민간단체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진행해 '전단 살포 중지를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등 가시적 결과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11일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중지했다. 전단 살포 문제로 인해 남북이 오물풍선 사태를 겪고, 9·19 군사합의의 파기(북한) 및 효력 정지(남한)라는 결정을 하면서 치닫았던 접경지 일대에서의 갈등을 일단 잠재우자는 의도였다. 북한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대남 소음 방송을 중단하면서, 일단 표면적으로는 상당한 긴장 완화 효과가 발생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당장 어느 정도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있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남한에 대해 호전적 언급이 예상됐던 지난달 신형 구축함 진수식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대남 메시지를 숨겼다. 현 남북관계 정세를 '공세'보다는 '관리'가 필요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 접촉 신고도 적극 수리하면서 다방면에서 북한을 움직이기 위한 포석을 깔고 있다.

남북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남북 연락채널의 복원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지난 2023년 4월부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채널과 동·서해 군 통신선을 단절하며 '최소한의 소통'도 거부하고 있다. 남북의 우발적 상황 관리를 위한 연락채널 복원에 북한이 호응한다면, 남북관계 전환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