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아닌 '미래' 키워드로 日 당겼다…이재명식 실용외교 첫 성과

'미래·동반자' 키워드로 협력 강화 강조…'과거사 문제 불거질 것' 日 우려 불식
美 상대 '공동 이익' 추구…대미 외교 동반자 얻어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의 첫 가시적 성과는 한일관계의 밀착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새 정부 출범 후 과거사 문제로 인한 한일 갈등에 대한 우려가 컸던 일본에게 '미래'와 '동반자'를 키워드로 제시하며 한일관계 개선을 넘어 밀착에 가까운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李, 日 이시바에 "앞마당 같이 쓰는 이웃"…'미래 협력' 한목소리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이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오후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에서 이시바 총리와 30분간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이시바 총리에게 한일관계를 "마치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제통상 환경·국제관계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점을 언급하고 한일 양국이 가깝고 보완적 관계에 있다며 "많은 부분에서 협력하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 두 문장을 통해 일본을 '동반자'로 여기고, 당장은 과거 문제 해결에 얽매이기보다 미래 지향적 관계 설정에 주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정상은 이날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에 대해선 '안건'으로 논의하지 않고 '미래 협력'에 대해서만 강조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日, 왜 환영하나…과거 위안부 합의 파기 '트라우마' 있었다

이같은 이재명 정부의 기조는 일본의 입장에선 반색할 만한 부분이다. 그간 일본 조야에선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곧바로 과거사 문제를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곤 했다. 그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인 2016년 12월 일본을 '적성 국가'로 칭한 적이 있고, 이 대통령의 이미지가 원체 '강성'이라는 점에서다. 일본의 극우 주간지 주간현대는 지난 9일 자 기사에서 이 대통령을 '반일 몬스터'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본의 우려는 같은 민주당 정권인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맺은 한일 강제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면서 생긴 부분이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취임 직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의 첫 통화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우리 국민 정서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입장을 표명하며 한일관계가 크게 악화됐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에 따른 관계 경색도 있었지만, 이로 인해 당시 일본 여론에 '한국은 믿을 수 없다'라는 인식이 크게 번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일본 여론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이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의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3자 변제안을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고 한다.

그러나 대선 직전 발표된 이 대통령의 공약과, 취임 후 이시바 총리와의 첫 통화가 모두 '미래지향적 관계 설정'을 중시하는 데 방점이 찍히자 일본의 기류도 급변했다. 일본도 급히 실무 소통을 통해 이 대통령의 '진의'를 확인했다고 한다.

지난 16일 이시바 총리의 최측근인 나가시마 아키히사 일본 총리 국가안보 보좌관이 방한해 △단기적인 이해득실에 얽매이지 말고, 양국의 장기적 전략 이익을 잊지 말 것 △과거의 합의(정부 담화 등)를 최대한 존중하고, 결코 후퇴하지 말 것 △양국 국민들을 용기를 가지고 설득해 나갈 것이라는 '역사 문제의 올바른 관리를 위한 3대 원칙'을 제시한 것도 이 대통령의 기조에 빠르게 화답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 외교가에서 나왔다. 정부는 일본이 먼저 '과거 합의를 존중하고 후퇴하지 않겠다'라는 의사를 밝힌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 News1 DB
"과거사 문제 덮자는 것 아니다"…일단은 대미 외교 '공동 대응'이 국익

대통령실은 이날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과거사 문제를 덮어두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일관계를 과거사 문제 해결과 미래 협력이라는 '투 트랙'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조라고 설명했다.

이는 당장 미국이 전 세계 동맹국을 상대로 관세 및 안보 청구서를 제기하며 동맹관계의 새판을 짜는 것에 대응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는 공감대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적지 않은 규모의 주둔 미군을 두고 있는 한일 양국은 미국이 제기하는 주둔군의 역할 변화와 방위비분담금, 국방비 인상 요구라는 초유의 안보 청구서를 곧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의 협상 전략이나 주둔군의 역할 변화 과정에 있어 한일 공동의 이익이 저해되는 부분 등에 대해 면밀한 소통이 중요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기조는 '투 트랙'이지만 일단 대미 외교에서의 큰 과업이 해결되지 전까진 한일이 상당한 수준의 밀착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외교가에서는 "난세의 최대 우군이 미국이 아닌 일본이 될 수도 있다"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가 '현재의 전략 환경'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라며 "동맹을 경시하는 인상을 주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통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과 중동 정세 격변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일이 협력을 모색하는 건 긍정적이기 때문에 현재의 분위기와 모멘텀을 잘 유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