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도 아직인데"…정부 약배송 언급에 약사들 장외투쟁

광화문에서 약사·약대생 등 5000여명 모여 집회
업계·환자 "관련 논의 더 미룰 수 없어" 지적도

대한약사회가 지난 9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 권영희 약사회장(가운데)이 투쟁 선포문을 낭독하고 있다.(대한약사회 제공)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12월 24일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정부가 약배송 확대를 거론하자 약사단체가 반발하며 20일 장외투쟁에 나섰다. 비대면진료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나온 이런 언급은 국회 입법권과 사회적 합의를 훼손한 데다 업계 이익에 우선된 판단으로 오해를 부른다는 이유에서다.

약사들은 비대면진료와 약배송이 의료쇼핑을 부추기고 건강보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관련 협의체 거부를 선언했다. 다만 진료와 처방은 비대면으로 열어둔 채 약은 약국에 가서 받는 게 타당하냐는 반론도 뒤따른다. 정부는 이해관계와 제도 공백을 조정할 책무를 안게 됐다.

"약은 택배가 아니다"…약사회 비대위, 5000명 모아 총궐기

대한약사회 국민건강권 사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약사와 약학대학 학생 등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건강·건강보험 수호 전국약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한다.

오는 12월 24일 시행되는 개정 의료법에 따라 코로나19 유행 이후 수년간 시범사업으로 운영돼 온 비대면진료가 제도화된다. 특히 △섬·벽지 거주자 △장기요양급여 수급자 △등록장애인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 등에 한해서는 비대면진료로 처방받은 약의 재택 수령도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달 20일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약배송 확대 논의를 시작해 보자"라고 밝히면서 약사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개정법이 시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전면 확대 언급은 국회의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며 사회적 합의를 훼손한 처사라는 이유에서다.

권영희 약사회장은 지난 9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대면진료 제도화는 국회와 보건의료계, 시민사회가 오랜 숙의 끝에 대면 원칙과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이뤄낸 사회적 약속"이라며 "정부는 사회적 신뢰를 스스로 깨부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사회는 약배송을 전면 확대하기보다 대면 조제를 원칙으로 하되 취약계층·지역 등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인구 10만 명당 약국이 41.8개로 접근성이 양호한 만큼 배송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특히 약은 실물이므로, 비대면진료와 배송은 별개의 환자 안전 문제라고 강조했다. 폭염·한파·고습 등 배송 환경에서 의약품의 적정 온·습도를 유지하기 어렵고 인슐린 등 온도에 민감한 의약품은 변질 우려가 있다는 논리다.

한 약국에서 약사가 입고된 비만치료제 '삭센다'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 뉴스1 김성진 기자

배송이 일반화되면 약사가 환자의 수령 여부를 확인하거나 대면 복약지도를 하며 처방 오류·중복·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현장에서 조정하는 기능도 약화할 수 있을뿐더러 현재까지 비대면진료의 비급여 처방과 의약품 배송 실태, 부작용에 대한 통계와 평가가 충분하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약사회는 전자처방전 전달체계와 비대면진료 지원시스템 등 관련 인프라도 완전히 구축되지 않았으니,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배송을 확대하지 않되 현행 제한적 배송을 먼저 시행한 뒤 안전성과 효과를 평가하며 확대 여부를 따져보자는 입장이다.

약사회 "국민 지켜내겠다" 환자단체 "배송 자체 막지 말아야"

약사들 반발로 약배송 확대 논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정부는 비대면진료 제도와 약배송 간 대상 범위 차이 때문에 확대 필요성은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며 관계 부처와 약사단체·비대면진료 플랫폼 업체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민관협의체'를 열어두며 약사회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약사회는 약배송 확대를 전제로 한 대화에 끼지 않겠다며 각계에 비대면진료·약배송 확대로 촉발될 문제점을 알린다는 방침이다. 약사회는 "국민건강과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이 걸린 문제"라며 "건강보험료가 새어나가는 구조를 막고 국민건강과 건강보험을 지켜내겠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약만 약국에서 받는 게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훼손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계는 안전성 지침에 충실히 따르며 약배송 협의에 참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약배송에 대한 기본적 견해가 달라 이견 조율은 당분간 난항을 거듭할 전망이다.

한국소비자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소비자시민모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4곳으로 구성된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최근 비대면진료 제도화에 따른 약배송 전면 확대를 촉구했다. 배송 자체를 제한하지 말고, 안전관리 체계를 만들자는 의미다.

이들은 "약배송 문제는 환자와 소비자의 접근권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며 "국민 안전을 이유로 제도 자체를 막는 일과 안전한 제도를 만드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정부는 하위 법령을 통해 안전한 배송체계를 설계하고 환자의 약국·배송업체 선택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