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약사들 발끈…"환자 안전 내팽개친 약 배송 확대 철회"(종합)

"합의없이 졸속 추진" 20일 전국 궐기대회 예고
약사회, 비상대책위원회 꾸려 대정부 투쟁 추진

대한약사회는 9일 청와대 앞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등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대한약사회 제공)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대한약사회는 정부가 비대면 진료 약 배송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약사회는 약 배송이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국회의 입법권과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정책이라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권영희 "비대위 꾸려 정부 폭주 막겠다"…젊은 약사, 약대생 등도 연대

권영희 약사회장은 9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건강권과 안전을 팽개치고 오직 영리 플랫폼의 이윤만을 위해 '의약품 배송 전면 확대'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독단적 폭주를 규탄한다"며 "이를 결사 저지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 출범과 총력 투쟁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국회와 보건의료계, 시민사회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합의했다. 오는 12월 시행 예정인 의료법 개정안에 비대면 진료 의약품 재택 수령 대상은 △섬·산간·벽지 거주자 △장기 요양급여 수급자 △등록장애인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달 20일 "비대면 약 배송 적용 대상 확대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며 약사법·의료법 등 관련 법규 개정도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약사회는 정부가 법 시행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배송 범위를 대폭 넓히려 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약사회는 의약품 전달을 단순한 '배달 서비스'로 봐서는 안 되며 투약의 과정이고 엄중한 보건의료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방전 위·변조를 막을 공적 전자 처방 전달 시스템과 안전한 비대면 진료를 관리할 지원시스템도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약사회는 "취약지역을 위한 최소한의 공적 인프라조차 없는 상황에서 약 배송을 전면 확대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대책 없는 위험에 내던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민간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특혜를 주기 위해 약 배송 확대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최근 국회가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상 겸업을 제한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직후 정부가 약 배송 전면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약사회는 "이번 조치는 정부의 보건의료 공공성 파기"라면서 "비급여 약물 쇼핑몰로 전락한 민간 영리 플랫폼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보건의료 공공성과 정책적 신뢰를 내팽개치고 자본의 논리에 무릎 꿇었다"고 지적했다.

안전성 검증과 통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약사회는 정부가 비급여 처방과 조제약 배송 실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계나 체계적인 평가 자료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약사회는 "안전성 검증조차 전무한 상태에서 국민을 약 배송의 마루타로 내모는 무책임한 도박을 즉각 멈춰야 한다"면서 "약 배송 전면 확대가 불필요한 의료 이용과 의약품 소비를 늘려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약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약국 접근성을 갖춘 우리나라에서 약 배송을 전면 허용하면 불필요한 의료쇼핑과 약물 남용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것"이라며 "이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로 이어져 필수·중증 의료 기반을 흔들고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젊은 약사들과 약학대생들도 연대 발언에 나섰다. 박현진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회장은 약사들의 반발을 직역 이기주의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박 회장은 "많은 약사는 눈앞의 이익보다 책임감과 소명감을 지키고자 영리 플랫폼 참여를 자제해 왔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는 9일 청와대 앞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등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대한약사회 제공)

박 회장은 "약은 더 많이 팔고 처방은 더 많이 받게 하는 게 언제나 국민에게 좋은 일은 아니다"라며 "이런 선택을 외면한 채 약사들의 저항을 밥그릇 문제로만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소개했다.

전국 1만 1000여 약대생들을 대표하는 대한약학대학학생협회(약대협)의 김백건 회장은 "우리는 당장 내일의 약국 매출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라며 "앞으로 우리가 헌신하고 책임져야 할 대한민국의 보건의료 생태계가 상업 논리에 무너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진정한 의약품 접근성은 약을 문 앞에 전달하는 단순한 수령의 편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진정 국민건강을 위한다면 무분별한 상업 배송이 아니라 공공심야약국, 취약지역 공공약국, 방문약료 등 지역사회 기반 공공 약료체계를 확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약사회는 비대위를 통해 9만 약사의 역량을 총동원하며 정부 정책을 저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오는 20일 '전국 약사 궐기대회'를 열 예정이며 다음 주부터는 국무조정실과 중소벤처기업부, 보건복지부를 항의 방문한다. 약 배송 확대를 전제로 한 협의체 참여는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권 회장은 "약 배송 전면 확대 시도를 당장 철회하고, 사회적 합의를 파기하는 플랫폼 특혜 행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정부는 보건의료 공공성 훼손을 반성하고 대면 중심의 원칙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