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프진 도입' 속도내는 정부…관건은 의료계·종교계 설득

복지부·성평등부·식약처·법제처 등 범부처 협의 지속
의료계와 합의점은 아직…종교계도 거센 반발

지난 2017년 11월 서울 중구 정동길에 페미니즘 활동 단체 페미당당이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며 모형 미프진(낙태약) 자판기를 설치해 약물적 임신중단법을 소개하고 있다. ⓒ 뉴스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정부가 임신중절약 '미프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적극 검토'를 지시한 데 이어, 최근 법제처가 법 개정 없이도 국내 품목허가가 가능하다는 취지의 유권해석까지 내놓으면서, 7년간 멈춰 있던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다만 실제 의료현장에서의 약 처방·관리 기준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차이가 뚜렷해, 이에 대한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 향후 미프진 도입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29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법제처, 성평등가족부 등 유관 부처는 국무총리 주재로 임신중약 도입을 위한 범부처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해당 부처들은 약을 허가하는 문제뿐 아니라 도입 이후 실제 의료현장에서 필요한 안전관리 방안 등을 놓고 이견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움직임에는 최근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법제처는 이달 중순 '임신중지약물에 대한 수입품목허가가 모자보건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를 묻는 식약처 질의에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국내 미프진 도입이 어려웠던 이유는 정부가 이를 허가할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프진 판권과 공급권을 가진 현대약품은 지난 2021년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식약처는 법적 근거 부족으로 이유로 허가 심사에 진전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지난달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임신중절약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대통령은 당시 "약물 사용이 제도권 밖에 방치돼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며 "지금처럼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프진 허용 기준을 법제화하기 전이라도) 의사가 재량으로 판단하게 허용한다든지 하는 게 법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법 개정과는 별개로 임신중약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할 방안을 검토하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런 대통령 지시 이후 약 한 달만에 법제처의 유권해석도 나오면서, 식약처를 비롯한 유관부처들이 미프진 허가 절차를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부-의료계 간 공식 협의는 아직…의료진 "법 개정 우선돼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뉴스1 허경 기자

그러나 아직 정부는 임신중약 도입과 관련해 인공임신중절위원회(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산부인과의사회·대한모체태아의학회·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등 의료계와 공식 협의를 개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은 약 허가와 안전관리 방안 등에 대해 부처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임신 몇 주까지 약을 사용할 수 있는지 △누가 처방할 수 있는지 △투약 전후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등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의료계와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의료계 대다수는 법 개정 없이 약의 품목허가부터 진행하는 방안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인공임신중절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은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이지만 투약 전 초음파를 통한 임신 주수 확인과 자궁외임신 배제, 투약 후 완전 배출 확인이 전제돼야 하는 고위험 전문의약품"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대량 출혈과 감염, 불완전 유산에 따른 응급수술 위험이 여성에게 있고, 형법상 공백도 해소되지 않아 진료지침을 준수한 의료인조차 법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프진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약을 실제 처방하기에 앞서 여성과 의료진을 보호할 최소한의 법적·의료적 안전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도입이 이뤄질 경우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다. 초음파 검사를 통해 확인한 임신 9주 6일 미만에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투약 전에 자궁외임신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면진료와 투약 이후 추적관찰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처방 지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종교계도 "사회적 합의 아직"이라며 반발

종교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와 기독교 단체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은 지난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제처의 임신중약 수입품목허가 관련 법령해석을 비판했다.

오석준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은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것이 옳다는 것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라며 "법제처의 해석은 수입품목허가가 모자보건법의 규율 대상인지에 대한 절차적 판단일 뿐, 생명에 관한 문제를 행정적·기술적 절차로 대신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생명에 관한 가장 중대한 결정은 국민의 사회적 합의와 국회의 입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프진 도입의 다음 과제는 '허가 가능 여부'를 넘어 '어떤 조건에서 허가·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될 전망이다.

정부가 의료계와 종교계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논의를 통해 안전관리 기준과 법적 공백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가 미프진의 실제 국내 도입 시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plusyo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