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 마약 지정돼야"…세계 최초 파격 제안에 유엔 답 낼까

팔라우, 유엔에 검토 촉구 통보문 제출…WHO 심사도 추진
韓 정부, 담배 규제 손실 예고…담뱃값 올릴지 고민할 듯

3일 서울의 한 편의점에 전자담배가 진열되어 있다. 2026.2.3 ⓒ 뉴스1 최지환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을 마약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제안이 유엔에 접수됐다. 논의 과정에 한국 정부도 참여해 입장을 정하게 됐다. 담배 제품을 넘어 물질부터 규제하자는 발상에 국제 사회는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17일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에 따르면 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공화국은 지난 10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니코틴이라는 물질 자체를 국제 마약류 규제 대상으로 검토해 달라는 공식 통보문을 제출했다.

팔라우는 제주도의 약 4분의 1 크기인 육지 면적과 2만 명 안팎의 인구를 보유한 작은 국가이지만 대양주 국가이자 군소도서개발국으로서 기후 변화 대응, 해양 생태계 보호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971년 유엔 '정신 약물에 관한 협약(1971년 협약)' 제2조에 근거한 팔라우의 요청은 개별 담배 제품이 아니라 니코틴이라는 화학물질 자체를 세계보건기구(WHO) 차원의 국제 심사 대상에 올린 사실상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팔라우 정부는 통보문을 통해 매년 흡연 관련 사망자가 700만 명을 넘는다는 점을 거론하며 그 중심에 있는 니코틴이 신경독성을 지닌 강한 의존성 물질임에도 지금까지 국제 약물 통제 체계 밖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일반담배, 가열 담배, 무연 담배 등 제품 단위로 규제를 설계해 왔는데 니코틴 파우치, 합성 니코틴, 새로운 형태의 전자담배 같은 신종 제품들은 이런 제품 중심 규제망을 비교적 쉽게 비껴갈 수 있다는 게 팔라우 측 문제의식이다.

니코틴 물질 자체를 통제하면 어떤 제품이든 같은 규제에 둘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담배에 대한 팔라우 정부의 규제는 강력하다. 입국할 땐 개봉된 담배 1갑만 면세가 허용된다. 전자담배의 반입과 사용은 금지돼 있으며 일반 궐련 담배도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엄격히 제한된다.

이번 통보문은 WHO 약물의존성전문위원회(ECDD)가 니코틴을 평가해 1971년 협약상 등급에 해당하는지 검토해 달라는 내용이다. ECDD는 △의존 △남용 위험 △공공보건에 대한 위협 △치료적 유용성으로 평가하는데 팔라우는 니코틴이 이를 모두 충족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1971년 협약은 통제 강도에 따라 4단계의 등급을 두고 있으며 어떤 물질을 어느 등급에 둘지 혹은 두지 않을지는 53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순환제로 운영 중인 유엔 마약류위원회(CND)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결정한다.

니코틴이 등급 분류 대상, 즉 마약으로 인정될 경우 각국 정부는 니코틴의 제조·유통에 대한 허가제 도입, 국경 간 거래 흐름 추적, 비규제 경로로 유통되는 사업자에 대한 단속 권한 등 새로운 국제법적 근거를 갖게 된다고 팔라우 측은 설명한다.

팔라우가 공개한 통보문에 따르면 올 하반기 WHO ECDD는 니코틴에 대한 정밀 심사에 도입하고 ECDD는 2027년 10월까지 WHO 사무총장에게 등급 분류 권고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2028년 3월 유엔 CND는 표결을 부칠 전망이다.

이 심사 과정에서 WHO 사무국은 모든 유엔 회원국에 표준 질의서를 배포해 의견과 자료를 제출받을 계획이라, 한국 정부도 이 절차를 통해 공식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리는 셈이다.

청소년지킴실천연대와 서울YMCA, 전문기관인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 규제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당시 이성규 센터장이 발언하고 있다. (청소년지킴실천연대 제공) 2024.11.22 ⓒ 뉴스1

이성규 센터장은 "팔라우의 이번 요청은 담배 제품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기존 궐련 중심 정책과 금연 사업만으로는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다양한 니코틴 제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우리라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담배 제품과 시장 변화가 매우 빠른 국가 중 하나"라면서 "이런 환경 속에서 국민건강, 특히 청소년과 여성은 담배와 니코틴으로 인한 새로운 위험에 지속해서 노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 센터장은 "국제 사회의 변화를 참고해 우리 역시 전자담배 이후 시장에 유입될 새로운 니코틴 제품에 대한 규제와 관리 체계를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보다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담배 건강증진부담금 인상을 포함한 금연 정책 전반의 재정비 필요성을 예고했다. 전자담배와 합성 니코틴 제품 확산 등 흡연 환경이 변화한 만큼 담뱃값 인상 같은 가격 정책과 규제 강화 등 비가격 정책을 함께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1일 출입기자단에 "흡연율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최근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고 새로운 형태의 담배가 확산하고 있어 긴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의견을 충분히 들으며 금연 정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