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GLP-1 약물 급여화, 오남용 막고 환자 살릴 열쇠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대한내분비학회 대정부정책특임이사.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대한내분비학회 대정부정책특임이사 = 한국 의료계의 고질적인 모순이 혁신 신약의 등장과 함께 다시 한번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를 뒤흔든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당뇨·비만 치료제 이야기다. 기적의 약이라 불리는 혁신 약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진작 이 약이 절실한 한국의 중증 환자들은 구경조차 못 하는 '그림의 떡'이 되었다. 반면 강남의 미용·성형 시장에서는 비급여라는 법적 테두리 바깥에서 수조 원대 시장을 형성하며 무분별하게 오남용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작부터 꼬였다. 주 1회 제형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세마글루타이드)'은 어렵사리 건강보험 급여 관문을 넘었지만, 지나치게 까다롭고 비현실적인 기준 탓에 임상 현장의 의사들이 사실상 처방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처지다. 후속 혁신 신약인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 역시 당뇨병 급여 협상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최종 결렬되며 환자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정부의 경직된 재정 논리가 혁신 신약의 접근성을 원천 차단한 결과다.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이 소외된 틈을 탄 것은 역설적으로 '미용·다이어트' 시장이다. 국내 비급여 비만 치료제 시장은 연간 1조 5000억 원 규모의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 특유의 외모 지상주의와 미용 선호 현상이 맞물리면서, 허가 범위를 벗어난 '오프라벨(Off-label)' 처방이 얼마나 횡행하고 있는지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정부는 뒤늦게 이들을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섰지만, 철저한 비급여·현금 시장의 특성상 실효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현장의 냉소적인 반응이다.

진짜 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비만으로 인한 심장·신장·대사이상(CKM)의 연쇄 고리에 갇힌 중증 환자들은 매달 수십만 원에 달하는 고가 약제비를 감당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심지어 합병증 위험이 상존하는 당뇨병 환자들마저 제대로 된 급여 기준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다. 돈이 있는 자들은 미용 목적으로 약을 사재기하고, 정작 생존을 위해 약이 필요한 환자들은 비용 장벽에 막혀 손을 놓아야 하는 처참한 역전 현상이다.

의학계 등 전문가 단체들은 오래전부터 대안을 제시해 왔다. 과거 실손보험 누수의 주범이던 도수치료를 제도권(관리급여) 안으로 편입시켜 모니터링하듯, GLP-1 계열 약물 역시 급여권 안으로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폭넓은 급여화를 통해 정말 혜택받아야 하는 중증 환자들을 스크리닝하고, 동시에 처방 내역을 투명하게 관리함으로써 비급여 시장의 오남용을 통제하자는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건강보험 제도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국민이 큰 병에 걸렸을 때 가계가 파산하지 않도록 위험을 분산하고, 보편적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혁신 신약이 개발되더라도 돈 있는 유전무죄(有錢無罪)의 전유물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사회안전망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정부는 언제까지 재정 타령을 하며 시장의 기형적인 오남용을 방치할 것인가. 진짜 환자들의 삶을 구원할 수 있도록 GLP-1 약물의 급여 기준을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것, 그것이 건강보험의 본래 취지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