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에서 태어난 바이러스, 남대서양 크루즈선까지 덮쳤다
한국전쟁때 '원인미상' 고열·출혈 집단 발병
'한국 파스퇴르' 이호왕 박사 1976년 발견…GC녹십자와 백신개발
- 구교운 기자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남대서양을 항해하던 크루즈선에서 한타바이러스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람 간 전파 가능성까지 조사하고 나섰다. 한타바이러스는 1976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규명된 감염병이다.
질병관리청은 8일 네덜란드 국적 크루즈선에서 발생한 호흡기 질환이 한타바이러스의 일종인 '안데스 바이러스(Andes virus)' 감염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감염자는 8명이며 이 중 3명이 사망했다.
해당 선박은 지난달 1일 아르헨티나 최남단 도시 우슈아이아를 출발했다. 일반 관광형 대형 유람선보다는 남극·남미 극지 탐험 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으로, 승객들은 승선 전 아르헨티나 지역을 여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야외 활동과 자연 탐방 일정 과정에서 설치류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WHO는 지난 5일 신속위험평가를 통해 크루즈선 관련 위험도는 '중간', 전 세계 위험도는 '낮음' 수준으로 평가했다.
이번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안데스 바이러스가 드물게나마 사람 간 전파가 보고된 한타바이러스 계열이기 때문이다. 질병청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환자와의 밀접 접촉으로 사람 간 전파가 보고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방역당국은 코로나19처럼 공기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는 감염병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한타바이러스는 주로 감염된 설치류의 소변·분변·타액 등에 오염된 에어로졸이나 환경 접촉으로 감염된다. 초기에는 발열과 근육통, 두통, 오한 등 감기와 유사한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일부 환자는 급격한 호흡곤란과 폐부종, 심장기능 저하로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질병청에 따르면 치명률은 20~35% 수준이며, WHO는 최대 50%까지 보고하고 있다.
한타바이러스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 때였다. 당시 미군 사이에서 고열과 출혈, 신부전을 동반한 집단 발병이 이어졌지만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이 질환은 ‘한국형 출혈열(Korean hemorrhagic fever)’로 불리며 미군 의학계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후 1976년 '한국의 파스퇴르'로 불리는 고(故) 이호왕 박사가 경기 북부 한탄강 인근 들쥐에서 원인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분리해냈고, 발견 지역 이름을 따 '한탄(Hantaan) 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 이것이 국제적으로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라는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발견된 '서울 바이러스'(Seoul virus) 역시 한타바이러스 계열로, 한국 지명이 국제 바이러스 명칭에 사용된 사례로 남아 있다.
이호왕 박사 연구진은 GC녹십자와 함께 1990년 세계 최초 한타바이러스 백신 '한타박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정희진 고려대 의과대학 백신혁신센터장은 "한타바이러스 감염증은 초기에 감기와 유사해 인식이 어렵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빠르게 중증으로 진행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사람 간 전파는 매우 제한적인 만큼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설치류가 많이 서식하는 숲이나 들판, 농장 등에서 활동 후 발열 등 증상이 나타나면 의료기관을 찾아야 하며, 야외 활동 뒤 손 씻기와 개인위생 관리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kuk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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