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희귀질환, 치료제는 있는데 환자는 버텨야 한다
(서울=뉴스1) 김희준 바이오 부장 = 희귀질환 치료를 둘러싼 기술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와 세포치료제 등 혁신신약이 잇따라 등장하며 과거 불치로 분류됐던 질병도 치료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문제는 이런 발전이 환자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료제가 있어도 환자는 치료를 결심하기보다 비용부터 살펴야 한다. 의료기술은 앞서가는데, 이를 보조할 정책과 제도는 뒤처진다.
희귀질환 환자는 소수이기 때문에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다. 그러나 환자와 가족에게 희귀질환은 삶 전체를 잠식하는 문제다. 진단까지 수년이 걸리고, 치료 과정은 장기화하기 일쑤다. 고가 치료제의 본인부담금, 반복되는 입원과 외래 치료, 간병과 이동에 드는 비용, 그로 인한 소득 상실까지 감안하면 희귀질환은 치료 과정에서 개인 또는 가족의 빈곤을 유발한다.
지금 희귀질환 지원책은 이런 상황을 크게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산정특례에 포함된 희귀질환 환자만 해당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신약개발이란 기술혁신은 공허할 뿐이다. 치료제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정책적 책무를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보건복지부는 앞서 희귀·중증난치질환에 적용되는 산정특례 본인부담률(10%)을 5%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단장증후군 등 70개 희귀질환도 이달부터 산정특례에 추가했다. 하지만 치료 비용의 부담은 여전히 높고, 산정특례에 포함되지 못해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치료제를 기다리는 희귀질환 환자는 여전히 많다. 이를테면 중추신경계에 연결된 대부분의 기관에 악성 종양을 유발하는 본히펠린다우 증후군(VHL) 환자에겐 웰리렉이란 특효약이 있다. 하지만 한달 약값만 2000만 원이라 집을 팔아 아이를 살리려다 더 이상 약을 사지 못해 좌절하는 부모의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재원의 한계, 건강보험료를 부담하는 일반국민과 희귀질환 환자의 형평성 등을 감안한다면 정부의 해법은 앞으로도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조금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이 '희귀질환 지원펀드'다. 이는 단순한 복지성 기금이 아니라 사회적 위험을 분산하는 장치다. 고가 치료제 본인부담금 지원, 치료 공백기 생계 보조, 간병·교통비 지원까지 포괄한다면 환자의 치료 중단 위험은 크게 낮아질 수 있다.
재원 마련 방식도 기존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만으론 '초고가' 치료제를 감당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희귀질환 치료를 특정 목적으로 한 복권이나 기금형 공익상품 도입도 하나의 선택지다. 복권 수익의 일부를 희귀질환 환자 지원에 연계하는 방식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도 용이하다. 개인의 작은 행운이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 구조라면, 공공성에 대한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희귀질환은 환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위험이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치료의 문턱을 낮추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치료 이후의 삶까지 책임질 것인가는 정책의 선택이다. 기술의 진보를 진정한 사회적 진보로 만들려면, 이제 보다 현명한 제도와 재원으로 답해야 한다.
h99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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