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우울증, 가장 흔하지만 가장 늦게 발견…인식개선 필요"

노인 인구 주요우울장애 유병률 1~4%, 경미한 우울증 4~13%
노년층, 신체증상 중심 표현해 타 진료과 전전하다 뒤늦게 발견

변기환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서울성모병원 제공)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이용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65세 이상 노년기 정신질환은 여전히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상이 상당히 악화된 이후에야 병원을 찾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변기환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31일 "진료 현장에서 정신질환을 '의지의 문제'나 '낫지 않는 병'으로 바라보던 인식은 많이 사라졌지만, 노년기 정신질환에 대한 경각심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노년기 정신질환 중 가장 흔하고 삶의 질을 크게 저해하는 질환은 우울증이다. 우울 증상이 심하고 2주 이상 지속되며,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 상실을 포함해 식욕 변화, 수면 장애, 피로감, 무가치감, 집중력 저하, 자살사고 등 9가지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동반되면 주요우울장애로 진단된다. 이 기준에 미치지 않더라도 일상 기능에 지장이 있으면 지속성 우울장애 등으로 진단된다.

국가정신건강포털에 따르면 일반 노인 인구에서 주요우울장애 유병률은 1~4%, 경미한 우울증은 4~13%로 보고된다. 만성 질환을 가진 노인에게서는 이 비율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다. 전체 성인 인구의 우울증 유병률이 약 7.8%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노년기가 가장 우울증이 흔한 연령대라는 설명이다.

특히 우울증과 연관된 가장 심각한 결과는 자살이다. 지난 2021년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자살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26명이었던 반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40.6명으로 훨씬 높았다.

노년기 우울증은 다른 연령대와 구별되는 특징도 뚜렷하다. 젊은 층이 우울감이나 무기력을 직접 호소하는 것과 달리, 노년층은 두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허리통증 등 신체 증상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가 뒤늦게 정신건강의학과에 의뢰되는 사례도 흔하다.

변 교수는 "은퇴, 자녀 독립, 배우자나 친구의 사망 등 노년기에 반복되는 상실 역시 우울증의 중요한 배경"이라며 "이런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우울감이 장기화되고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지 저하와 치매와의 감별도 중요하다. 치매 환자의 30~80%에서 우울 증상이 동반되며, 심한 우울증은 주의력과 집행기능 저하로 치매와 유사한 인지 저하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 저하는 치료를 통해 호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퇴행성 치매와 구별된다.

변 교수는 "노년기 우울증은 그동안 노화 과정의 일부로 간과돼 왔지만 노인 인구 증가와 액티브 시니어의 등장 속에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이는 개인의 삶의 질을 지키는 것을 넘어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원을 보호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과 적극적인 치료 연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uko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