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자주 바꾸면 사망 위험 21%↑…453만명의 ‘연속성 효과'[김규빈의 저널톡]

‘주치의 제도' 더 이용할 수록 응급실 방문 줄어
덴마크 연구진 "환자-의료 시스템과의 연속성, 작은 수준이라도 큰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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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진료를 어디서 받느냐보다, 진료가 얼마나 끊이지 않고 이어졌는지가 환자의 생존과 의료 이용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덴마크 성인 전 인구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 같은 일반진료 클리닉에 오래 등록돼 있을수록 사망 위험과 응급의료 이용이 낮았고, 반대로 진료소를 자주 옮길수록 불리한 결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덴마크 오르후스대 공중보건대학 연구진은 2006년부터 2021년까지 덴마크 국가 등록자료를 활용해 성인 453만 293명의 일반진료 연속성과 건강 지표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연구진은 동일 진료소에 등록된 기간과 과거 의료기관을 변경 횟수가 사망, 입원, 응급의료 이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1년간 추적 관찰했다.

연구진은 2022년 1월 1일 기준 덴마크에 거주하며 일반진료 클리닉에 등록된 18세 이상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등록한 진료소에 7.1년 동안 머물렀고, 과거 16년 동안 진료소를 한 차례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분석에는 성별, 연령, 교육 수준, 고용 상태, 이주 배경, 도시 규모, 장기질환 여부 등 사회·의학적 요인을 모두 반영했다.

분석 결과, 동일한 일반진료 클리닉에 10년 이상 등록된 환자와 비교했을 때, 0~1년만 등록된 환자는 건강지표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위험은 21% 높았고, 의료 부문 간 연속성이 낮을 가능성은 20% 높았다. 계획되지 않은 병원 접촉은 25% 증가했고, 근무 시간 외 진료 이용도 21%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노출과 반응 관계로 나타났다. 즉, 등록 기간이 짧을수록, 그리고 과거 진료소 변경 횟수가 많을수록 사망 위험이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다만 연구는 한 가지 중요한 점도 함께 제시했다. 과거에 진료소를 자주 옮긴 환자라도, 현재 진료소에 장기간 머물 경우 일부 위험은 완화됐다. 이는 연속성이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회복 가능한 보호 요인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는 흔히 말하는 '주치의 효과'를 직접 검증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특정 의사 개인과의 관계를 추적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진료소에 얼마나 오래 등록돼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진료소를 바꿨는지라는 조직 단위의 연속성을 측정했다.

같은 일반의에 오래 남은 환자, 병원 덜 갔다…예후 바꾸기도

연구진은 진료의 연속성을 세 가지로 나눈 기존 개념을 제시했다.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관계가 축적되는 관계 연속성, 과거 진료 정보가 누적되는 정보 연속성, 그리고 치료 계획이 일관되게 관리되는 관리 연속성이다. 이 가운데 관계 연속성은 중요하지만, 그 전제 조건은 ‘시간에 걸친 진료의 지속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덴마크의 일반진료 체계는 대부분이 그룹 진료소 형태다. 여러 의사가 같은 진료소에 속해 환자 기록을 공유하고 협력 진료를 한다. 연구진은 개인 의사와의 1대1 관계가 아니더라도, 같은 진료소에 오래 머물면 조직 차원의 연속성이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반복적인 접촉은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더 잘 설명하게 만들고, 의료진은 환자의 평소 상태와 변화를 비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이나 계획되지 않은 입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같은 진료소에 오래 머물수록 환자는 진료 예약 방식, 상담 경로, 의료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이는 의료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는 연속성이 낮을수록 의료 부문 간 연속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의료 부문 간 연속성은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동일한 주된 제공자와 얼마나 일관되게 연결돼 있는지를 의미한다. 이 지표가 낮을수록 환자는 응급실이나 야간진료로 더 자주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이 관찰연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고, 진료소 변경의 이유를 세밀하게 구분하지 못한 한계도 있다. 예를 들어 요양시설 입소로 인해 진료소를 변경한 경우가 일부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연구진은 요양시설 입소와 관련된 진료소 변경을 제외한 민감도 분석을 추가로 수행했고, 그 결과 사망 위험 증가는 일부 완화됐지만 전체적인 경향은 유지됐다.

연구진은 "진료가 끊기는 구조가 환자에게 어떤 비용을 남기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며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라거나 '주치의가 생존을 보장한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과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속성은 개인 의사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조직 차원의 일관된 진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환자가 의료 시스템 안에서 지속적으로 연결돼 있는지 여부"라며 "작은 수준의 연속성 개선도 의료 이용과 사망 위험에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즉 진료소 변경이 잦은 환자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연속성을 측정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다만 국내 의료 체계는 덴마크와 다르다.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이 훨씬 자유롭고, 진료소 변경 비용도 낮다. 그러나 그만큼 진료의 단절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이번 연구는 특정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자는 메시지가 아니라, 연속성이 환자 결과와 연결된다는 점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완할 것인지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The Lancet Regional Health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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