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보험료 인상은 노후 위한 안전장치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초고령화다. 이미 65세 이상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섰고 2045년에는 전체의 40%에 이를 전망이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뿐 아니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돌봄 수요에 비해 장기요양보험 재정이 지나치게 취약하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지출이 연간 100조 원 수준인 데 반해 장기요양보험은 110만 명 수급자를 대상으로 약 10조 원만 쓰고 있다. 일본이 개호보험에 연간 115조 원을 투입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의 돌봄 서비스는 질도 양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2008년 21만 명에서 2024년 110만 명으로 5배 이상 증가했지만, 보험료율 상승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75세 이상 후기고령자의 급증으로 치매·와상 등 중증 돌봄 수요는 앞으로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상자를 축소하면 돌봄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된다. 이미 보호자들은 매달 150만~250만 원의 사적 간병비를 지출하며 버티고 있고,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경우 월 300만 원 이상 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임금 노동자 평균 월급의 절반 수준으로, 장기간 견디기 어렵고 돌봄으로 인해 가족이 일을 그만두거나 근로시간을 줄이는 등 가정 경제와 국가 생산성 모두 손실을 보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준비금이 적고 보험료율이 건강보험료에 연동돼 있어 독자적 재정 확충이 거의 불가능하다. 2026년 기준 소득 대비 0.9448% 보험료율로는 현실의 돌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 결과 공단은 재정 확충보다 준비금 증가에 초점을 두고 혜택을 제한하는 운영을 반복해 제도가 본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장기요양보험은 고령자의 존엄과 자립을 지원한다는 목적을 상실하고 최소한의 돌봄만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전문 돌봄 수가 신설, 전문인력 양성, 맞춤형 돌봄 확대 등 돌봄의 질을 높이는 핵심 서비스가 필요하다. 특히 장기요양보험에도 의료처럼 전문성과 난이도를 반영한 '구강 돌봄 수가'를 신설하고, 일본처럼 요양보호사 등급제를 도입해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지역사회 고령자 돌봄은 간호이론가들이 강조한 전인적 돌봄의 원칙에 따라 신체·정신·사회·영적 영역을 통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만약 10가지 요소가 모두 충족될 때 완전한 돌봄이라고 가정한다면, 단 하나가 빠져도 총점이 90점이 아니라 0점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지역사회 돌봄 정책에서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구강 건강 관리가 사실상 빠져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구강 기능은 영양 섭취, 의사소통, 감염 예방, 삶의 질과 직결되며, 특히 와상 환자는 관리 부재가 폐렴 등 중증 합병증으로 이어져 의료비가 급증한다.

전인적 돌봄의 기준에 비춰 볼 때 구강 돌봄이 누락된 현 체계는 완전한 돌봄이라고 할 수 없다. 자립(self-help)을 강조한 버지니아 헨더슨(Henderson)의 14개 기본간호요구에도 영양·의사소통·위생 등 구강 관리와 직결되는 요소가 포함돼 있어 그 중요성은 명확하다. 돌봄은 단순노동이 아니라 전문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영역이며, 그 가치는 반드시 수가에 반영돼어야 한다. 결국 돌봄의 질과 양은 사람과 돈이다.

구강검진 차량에서 어르신들이 무료 치과진료를 받고 있다. /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전 세계적으로 독일(1995)·일본(2000)·한국(2008)은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어 단순히 재정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미래 돌봄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이제는 전자정부 혁신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AI·IoT·원격 모니터링 기반의 맞춤형 디지털 돌봄 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스마트 돌봄 체계는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서비스의 효율성과 품질을 높이고, 고령자의 안전과 자립을 강화하는 한국형 디지털 헬스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다.

결국 장기요양보험료 인상은 국민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는 조치가 아니라 미래의 더 큰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 투자다. 장기요양보험을 안정적으로 작동시키는 것, 바로 그것이 국민 모두의 노후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선택이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