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더 빨리, 필수약은 끊기지 않게…약가제도 확 바꾼다[약가개편]

희귀·중증 치료제 등재 240→100일 단축…환자 접근성 개선
신규 제네릭 '국제수준' 40%대 산정률…필수약 지정 확대·원가보전 강화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환자들이 생명과 직결되는 신약을 제때 쓰기 어렵고 일상에서 필요한 필수의약품마저 반복적으로 동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약가제도를 15년 만에 대폭 개편한다. 신약 접근성을 높이고 필수약 공급 기반을 강화하며 그동안 과도하게 유지돼 온 제네릭(복제약) 가격 구조를 국제 수준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보건복지부는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이 같은 약가제도 개편 방향을 보고했다. 복지부는 한국은 희귀·중증 치료제 등재까지 평균 240일 이상 걸리고, OECD 평균 대비 제네릭 약가가 높게 형성돼 있다며 제도 손질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중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약가제도 개편 방향은 크게 3가지로 신약 접근성 강화, 필수의약품 안정공급, 제네릭 약가 관리 합리화"이라며 "내년 2월 최종 의결을 거쳐 이르면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의 급여 등재 기간을 현행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줄인다. 심사평가원은 급여기준 평가 중심으로 역할을 조정하고 약가는 외국 평균가 참고나 계약 방식을 활용해 심의 절차를 간소화한다. 규정 개정 전이라도 시범사업을 통해 단축 효과를 즉시 적용할 계획이다.

약가유연계약제도도 도입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시가격(list price)–실제거래가격(net price)' 구조를 국내 약가에도 반영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고시가격이 곧 실제 거래가격이어서, 이중가격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약값이 상대적으로 낮게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표시가격이 낮아 보일 경우 다국적 제약사가 다른 나라 진출 전략을 세울 때 한국을 후순위로 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약 도입이 지연되는 이른바 '한국 패싱'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정부는 표시가격을 국제 비교용 기준으로 제시하되 실제 건강보험 지출은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는 방식으로 설계한다. 환자 환급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부 약제는 처음부터 실제가격에 맞춰 청구하는 방식을 병행하며 이를 통해 혁신 치료제의 국내 도입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대책도 강화된다. 생산이익이 낮아 시장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는 필수약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돼 온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는 지난 2000년 도입 이후 거의 손질되지 않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지정 기준을 상향하고, 기존의 기업 '신청주의'에서 벗어나 정부가 직접 수급 상황을 모니터링해 필요한 품목을 적극 지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원가보전 기준을 높이고 원료 가격 인상분을 신속 반영하는 등 생산 유인을 강화하는 한편 안정적 공급을 위한 계약 이행 의무도 강화할 예정이다.

제네릭 약가도 국제 기준에 맞춰 손질된다. 정부는 신규 제네릭의 가격을 오리지널 대비 '40%대' 수준에서 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네릭 산정률은 오리지널 약값의 몇 % 수준에서 제네릭의 최초 가격을 책정할지를 뜻하는데, 현재 국내 산정률은 53.55%로 같은 성분의 약임에도 국제 기준보다 높게 시장에 진입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국내 산정률을 일본(40%), 프랑스(45%)와 유사한 40%대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개편이 확정되면 내년 7월 이후 새로 등재되는 제네릭부터 적용되며 기등재 제네릭은 2012년 일괄인하 이후 10년 넘게 가격 변동이 없었던 품목부터 3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조정한다.

연구개발(R&D) 투자와 필수약 수급 안정에 기여하는 제약사에 대한 우대도 강화된다. 제네릭 최초 등재 시 일률적으로 적용되던 가산 제도는 R&D 투자 비율, 임상 성과, 공급 안정 기여도 등 구체적 지표를 반영해 차등 적용한다. 가산 기간도 현재 1년에서 최대 3년, 수급안정형은 최장 10년까지 확대해 기업의 혁신·공급 투자를 유도한다.

복지부는 건정심 보고 이후 제약업계·환자단체·전문가 의견을 추가로 수렴해 내년 1분기 중 최종안을 확정하고, 관련 고시·규정 개정을 거쳐 내년 7월부터 과제별로 순차 시행할 계획이다.

kuko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