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건강에 '의료진 선택'이 중요한 이유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이제 우리의 노후는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의 문제가 됐다. 그러나 그 관리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 즉 '의료진 선택'에 달려 있다. 많은 사람이 "의사라면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의료제도 차이를 살펴보면, 의료진의 전문성과 역량을 구분해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명확히 드러난다.

한국은 의료법상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내과, 외과, 피부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거의 모든 진료 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 법적으로는 '의사라면 모든 진료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반의가 미용 시술을 하거나 성형외과 수술을 시행하는 일도 합법이다. 물론 의료윤리와 상식이 이를 제한하지만 법적 규제만 놓고 보면 진료 행위의 범위는 매우 넓다.

그 결과 환자 입장에서는 누가 해당 분야의 '진짜 전문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로, 국내 피부과 전문의는 약 2950명에 불과하지만 피부 진료를 표방하는 1차 의료기관은 3만여 곳에 달한다. 즉 약 10곳 중 1곳만 피부과 전문의의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같은 의사라도 진료 행위마다 별도의 역량 인증과 보험 제한이 따른다. 예를 들어 치과의사가 전신마취를 시행하려면 주마다 정해진 교육 이수 시간과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이를 증빙하지 못하면 보험이 해당 시술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한 의료사고보험(malpractice insurance)에 가입할 때 자신의 전문 분야 외의 진료를 하면 보험료가 폭등하거나, 아예 가입이 거부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환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자격 증명 기반'(credential-based) 구조로, 의료 행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객관적으로 증명해야만 진료가 허용된다. 반면 한국은 '면허 기반'(license-based) 구조로, 면허를 취득하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료할 수 있다. 이는 의사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환자에게는 선택의 부담을 떠넘긴다. 따라서 환자 스스로 의료진의 경력, 학회 활동, 전공 세부 과목 등을 확인하고 선택해야 한다.

서울 강남구 성형외과 밀집지역의 모습.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나이가 들수록 단일 질환보다 여러 만성질환이 동반되며, 약물 간 상호작용과 신체 기능 저하로 인해 의료의 정밀성이 더욱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단순히 '친절한 의사', '유명한 병원'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노인 환자를 다루는 경험이 풍부한 내과의사, 고령자의 마취와 통증 관리에 숙련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그리고 다학제 협진을 조율할 수 있는 코디네이터형 의사가 노후 건강의 관건이다.

또한 고령자 진료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유지하는 문제다. 의료진의 판단 하나가 생명을 살릴 수도, 평생의 불편을 남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치과 치료 시 국소마취제의 선택이나 투약량 조절의 차이에 따라 인지 기능 변화, 약물 부작용, 심혈관계 합병증 발생률이 달라질 수 있다. 고령자에게는 이러한 미묘한 차이가 곧 삶의 질의 차이가 된다.

우리는 의료진을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평생 건강의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단순히 병원 간판이나 광고 문구에 의존하지 말고, 해당 의사가 속한 학회, 전문의 자격, 임상 경험, 논문·연구 활동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의료소비자원, 의학회 홈페이지, 의료분쟁조정위원회 등 공식 채널을 통해 검증된 정보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 '의인성 손상'(Iatrogenic harm)은 의료 행위나 처치 그 자체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의미한다. 즉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한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새로 유발된 손상, 합병증 또는 기능 저하를 포함한다. 대표적으로 과도한 약물 투여로 인한 간·신장 독성,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내성균 발생, 마취나 수술 과정에서의 신경 손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부작용의 본질은 의료진의 '의도된 선의'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 모두 이를 예방하기 위해 치료의 이익뿐 아니라 잠재적 위험까지 투명하게 공유하고, 근거 중심의 의사결정(evidence-based decision making)을 실천해야 한다. 결국 의료의 질은 기술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안전 시스템과 의료 문화에 달려 있다.

고령자에게 의인성 손상으로 인한 건강 악화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리고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현명한 선택으로 지킬 수 있다. 의료진 선택은 그 출발점이다.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는 단순한 진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남은 생애를 맡길 사람을 고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의료진의 역량이 제도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의료 문해력'(medical literacy)이 중요해지고 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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