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소 없는 피로가 더 무섭다"…런던베이글 청년의 심장은 왜 멈췄나

의료계 "과로 후 어지럼·불면 반복되면 진료 받아야"
요식업·서비스직, 장시간 서 있는 노동이 심혈관계 부담 키워

유명 베이커리 브랜드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20대 직원이 주 80시간에 가까운 근무 끝에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돼 고용노동부가 기획감독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9일부터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과 본사 엘비엠(LBM)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노동부는 이번 감독에서 고인의 근로시간뿐 아니라 전 직원의 근무·휴가·임금체불 여부를 점검하고,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다른 지점까지 감독을 확대할 계획이다.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한 매장 앞에서 정의당 관계자가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5.10.30/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서울의 한 유명 베이커리 브랜드에서 근무하던 20대 직원이 지난 7월 회사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사망 직전 일주일 동안 80시간 넘게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의료계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수면 부족이 주요 위험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2일 문진영 한양대학교 교육협력 명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단기적 스트레스보다 위험한 것은 회복 없이 누적되는 긴장 상태"라며 "이 상태가 수면과 교감신경 기능을 동시에 무너뜨릴 때, 급성 심장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노동과 수면 부족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인체의 자율신경계와 심혈관계, 내분비계 전체를 무너뜨리는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회복 시간 없이 긴장이 이어지면 교감신경이 지속해서 활성화되고 부교감신경의 안정 기능이 억제된다. 그 결과 심박수가 빨라지고 혈압이 불안정해지며 혈관이 수축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된다. 이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서서히 커진다.

이러한 변화는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첫 단계다. 하루 4시간 이하의 수면이 2주 이상 이어질 경우 생체 리듬이 붕괴하고, 교감신경의 항진이 고정된다. 그 결과 혈압이 들쭉날쭉해지고 혈관이 제대로 수축과 이완을 하지 못한다. 피가 엉겨 붙는 혈전이 생길 위험이 커지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증가하면서 심근경색이나 돌연사의 가능성이 커진다.

서서 일하고, 잠 못 들고…서비스 노동자에게 가장 위험한 조건

서서 일하거나 움직임이 제한된 노동자에게는 생리적 변화가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요식업이나 서비스업 종사자는 장시간 서 있는 동안 다리에 압력이 높아지고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다. 다리에서 심장으로의 혈류가 줄고 근육 긴장이 지속되면 피로 물질인 젖산이 쌓여 피로가 해소되지 않는다. 운동 후에도 혈압이 높게 유지돼 심장에 반복적인 부담이 생긴다.

심혈관계 부담은 에너지 대사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가 길어지면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공복 혈당이 높아진다. 에너지를 보충하려는 반응으로 탄수화물 섭취가 늘고, 혈중 중성지방이 증가해 고지혈증이나 대사증후군 위험이 커진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심장 근육에 산소 공급이 제한돼 급성 심근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면역 기능 저하도 문제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은 면역세포의 활성을 떨어뜨려 감염에 취약하게 만든다. 수면 부족이 계속되면 감염 후 회복이 늦어지고 합병증 위험이 커진다.

장시간 노동이 초래하는 신체 변화는 대부분 자각 증상이 거의 없다. 가벼운 어지럼증이나 수면장애, 피로감이 반복될 때는 이미 교감신경의 긴장이 지속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두통, 흉통, 식욕 저하, 불면 등 증상이 두 가지 이상 반복된다면 전문적인 진료가 필요하다. 특히 30세 미만의 젊은 연령대에서도 돌연사의 전조는 뚜렷하지 않게 나타나 단순 피로로 오인되기 쉽다.

문 교수는 "자각 증상이 거의 없다가 갑작스러운 실신이나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경고 체계 없이 발견되기 어렵다"며 "장시간 노동 등 누적 피로를 조기에 감지하려면 출퇴근 기록 등 생체리듬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건강상담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