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장내 세균·세포 반응 동시 분석…크론병 예후 예측 길 열려

연세대·세브란스 공동연구, 소아 크론병 환자 조직 1만3876세포 분석
세균 분포 많을수록 재발 시기 짧고 내시경 중증도도 높아

박유랑 연대의대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교수·장수영 강사, 고홍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소화기가영양과 교수(연세의료원 제공)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국내 연구진이 장 조직 내 세균의 위치와 사람 세포의 유전자 반응을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난치성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 환자의 예후를 예측하고, 새로운 치료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연세대 의대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박유랑 교수와 장수영 강사,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고홍 교수 연구팀은 크론병 환자의 장 조직에서 세균의 분포와 세포 유전자 발현을 함께 분석하는 공간(host-microbiome) 프로파일링 기법을 구축했다고 8일 밝혔다.

크론병은 소장과 대장에 만성 염증이 발생하는 난치성 질환이다. 복통·설사·혈변이 반복되며, 염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장 협착이나 천공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전적 소인 위에 장내 미생물과 면역계의 비정상적 상호작용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왔지만, 실제 환자 조직에서 세균의 위치와 세포 반응을 동시에 확인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균 RNA와 숙주 세포 RNA를 동시에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적용했다.

이번 연구에는 소아 크론병 환자 6명(평균 나이 13.5세)과 대조군 2명(평균 나이 15세)에서 얻은 회장 말단 조직 14개가 포함됐다. 연구팀은 이들 조직에서 총 1만 3876개의 세포를 분석해 세균 존재와 세포 반응을 고해상도로 파악했다.

그 결과, 크론병 환자 조직은 정상 조직보다 세균 침투가 뚜렷하게 많았으며, 염증이 심한 부위일수록 세균 밀도가 증가했다. 세균 분포가 많은 환자일수록 재발 시기가 더 짧았고, 내시경에서 확인되는 중증도도 높았다.

연구팀은 세포 유형별로 반응 차이를 살폈다. 면역세포가 많은 영역에서는 세균이 존재할 때 항체를 만드는 유전자(IGHG4, IGKC, IGHA1 등)의 발현이 크게 증가했다. 반면 장 상피세포가 많은 영역에서는 지방 흡수와 관련된 대사 경로(킬로미크론 매개 지질 운반 등)가 억제됐다. 이는 세균 침투가 면역 활성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장 세포의 대사 기능을 방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균의 종류에 따라 세포 생존율이 달라졌다. 연구팀은 특정 세균이 존재할 때 세포 사멸 위험을 상대위험도(RR)로 계산했는데, 대표적인 유익균인 파칼리박테리움 프라우스니치(Faecalibacterium prausnitzii)는 RR 0.54(95% CI 0.49~0.60)로 세포 손상 위험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바크테로이데스 카카에(Bacteroides caccae) 역시 RR 0.53으로 보호 효과가 있었다.

반면 피부에 흔한 세균이지만 병원성으로 작용할 수 있는 큐티박테리움 아크네스(Cutibacterium acnes)는 RR 1.50으로 세포 손상 위험을 1.5배 높였다. 호흡기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파라인플루엔자균(Haemophilus parainfluenzae)도 RR 1.40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서는 총 16종의 잠재적 유익균과 9종의 병원균 후보가 확인됐으며, 이 중 일부는 기존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이었다. 새롭게 발견된 유익균에는 Sellimonas intestinalis, Turicimonas muris 등이 포함됐다. 유익균이 많은 조직에서는 장 상피 손상 억제와 면역 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활성화됐다.

연구팀은 세균과 숙주 세포 간의 상호작용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점도 확인했다. 면역세포가 많은 영역에서는 항체 관련 유전자 발현이 일정하게 증가했으며, 이는 세균 침투에 대한 면역계의 강력하고 균일한 반응을 의미한다. 반면 상피세포 영역의 반응은 더 다양해, 세균 종류에 따라 억제되거나 활성화되는 경향이 달랐다. 이는 크론병에서 면역세포가 방어 반응의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세균-세포 상호작용을 종 단위까지 분해해 확인한 첫 시도로, 공간 단위에서 세균의 위치와 숙주 반응을 동시에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기존의 16S rRNA 기반 연구가 세균을 속(genus) 단위까지만 구별할 수 있었던 한계를 넘어, 이번 연구에서는 95종 세균을 식별하고 이들의 조직 내 위치와 영향까지 분석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소아 환자 6명이라는 작은 규모에 한정됐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다. 대조군도 건강 아동이 아닌 과민성장증후군(IBS) 환자로 구성돼 일반화에는 제약이 있다. 또 공간 전사체학 기술이 단일 세포 해상도를 갖추지 못해 같은 구역 내 세포 반응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홍 교수는 "유익균과 병원균을 동시에 식별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미생물 기반 치료 전략 개발과 환자 예후 예측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의 바이오산업기술개발 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바이오의료기술개발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최신 호에 게재됐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