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목소리로 병원 평가"…376개 병원·7만7500명 대상, 이번달 시작

올해 첫 '등급제 평가' 도입…1~5등급으로 병원 성과 공개
심평원 "환자 목소리, 서비스 질 개선과 지원 기준으로 연결"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올해부터 환자경험평가 기준이 새롭게 개편돼 전국 대형병원에 적용된다. 평가 결과는 정부 지원과 병원 평가에 직접 반영되는 만큼, 환자들의 참여가 더 나은 의료서비스로 이어진다. 단순한 만족도 조사를 넘어, 환자의 경험이 병원의 질과 국가 정책을 함께 바꾸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2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환자경험평가는 국제적으로도 의료 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보건의료체계의 목표 중 하나로 '이용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강조했고, 미국 의학원은 환자의 선호와 가치를 존중하는 '환자 중심성'을 의료 질의 요소로 정의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효과성·안전성과 함께 환자경험을 주요 지표로 관리하며, 미국 보건의료연구품질원은 환자경험을 환자 중심 의료로 나아가는 핵심 단계로 평가한다. 이는 의료의 질이 단순히 진료 기술에 그치지 않고, 환자와의 소통과 존중까지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7년 처음 도입돼 환자와 의료진 간 상호작용, 병원 환경 등 대인적 요소를 공식적으로 질 평가에 포함했다. 2023년 4차 평가는 374개 기관, 6만 4246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에서 모바일웹 조사로 전환해 참여 접근성을 높였다. 지난해 연세대학교 위탁연구를 통해 모바일웹 환경에 적합한 설문도구 개선이 이뤄졌고, 올해 3월과 4월 분과위원회 및 의료평가조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5차 평가 세부시행계획이 확정됐다.

환자는 평가를 통해 병원 선택에 필요한 객관적 정보를 확인하고, 의견을 제시해 권리와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 병원은 평가 결과로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환자 응대 교육이나 시설 정비 같은 개선 활동을 추진할 수 있다. 정부는 평가 데이터를 정책 개선과 지원 기준으로 활용하며, 신포괄 정책가산평가·의료질평가 지원금·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등 핵심 지표에 반영한다.

심평원 관계자는 "환자경험평가 결과는 국가 의료정책 전반에 직접 반영되는 만큼 의미가 크다"며 "평가가 우수한 병원은 정부 지원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이를 통해 병원들이 단순한 진료의 질뿐 아니라 환자 중심의 서비스 향상에도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경험 평가자료 수집방법 및 절차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의사·간호사 소통부터 병원 환경까지…환자 경험 전반 평가

5차 평가는 8월부터 12월까지 약 5개월간 진행된다. 평가대상자는 청구자료를 기반으로 선정하며 퇴원 후 8주 이내인 환자가 포함된다.

대상 기관은 올해 4월 말 허가 병상 기준으로 선정된 상급종합병원 47곳과 종합병원 329곳, 총 376곳이다. 병상 규모별 표본은 100명에서 600명까지 차등 적용되며, 전체 목표 수는 7만 7500명이다. 대상 환자는 만 19세 이상 성인 입원환자로 최소 1일 이상 입원해야 하며, 낮병동·완화병동·소아청소년과·정신건강의학과 환자는 제외된다.

조사는 전문조사업체 위탁을 통해 모바일웹 설문으로 진행된다. 설문은 간호사·의사 영역, 투약 및 치료과정, 정서적 지지, 환자 안전과 병원 환경, 환자권리보장 등 7개 영역 26문항으로 구성됐다.

주요 항목에는 △의료진이 환자를 존중하고 경청했는지 △병원생활과 회진 시간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는지 △검사·처치 전후로 부작용을 안내했는지 △병원 환경이 안전하고 청결했는지 등이 포함된다. 또한 △치료 결정 과정 참여 기회 △신체 노출 배려 여부 △퇴원 후 주의사항 안내 △병원 이용 경험 점수(0~10점) △추천 의향 등을 묻는다. 환자의 목소리가 의료서비스 전반에 반영되도록 설계된 것이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등급제 평가' 도입이다. 기존에는 점수만 공개됐지만, 5차부터는 기관별로 최대 5단계 등급을 부여한다. 등급은 병원평가 누리집과 모바일 앱을 통해 국민에게 공개되고, 병원에는 서면통보서와 e-평가시스템으로 안내된다. 결과에는 기관별 문항 점수, 종별·지역별 평균, 인구학적 특성별 응답 분포 등이 포함되며, 정부와 유관 단체에는 정책 기초자료로 제공된다.

환자경험 평가 방법·평가 결과 산출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우수 병원 정부 지원 혜택↑…병원별 성과 공개 예정

과거 환자경험평가 우수사례를 보면, 현장에서 다양한 개선 활동이 이어졌다. 지난 4차 평가에서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은 카드뉴스 발행, 회진 문화 개선 캠페인, 검사·시술 안내문 제작으로 환자 소통을 강화했다. 건국대학교병원은 회진 전 알림 문자 발송, 병원생활 안내 동영상·QR코드 제공으로 편의성을 높였으며, 맞춤형 교육과 의견제기 경로 홍보로 환자가 의견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다른 병원에서도 나타났다. 계명대 동산병원은 환자경험 전담 태스크포스(TF)와 실시간 고객의소리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매월 우수 부서를 포상해 자발적 개선 활동을 장려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전 직원 참여 캠페인과 QR코드 시스템을 도입해 환자가 불편을 손쉽게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환자경험평가가 단순한 조사에 그치지 않고 병원 내부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제도가 현장의 행동 변화를 촉발해 환자 중심 문화가 실제로 확산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특히 환자경험평가 결과는 신포괄 정책가산평가와 의료질평가 지원금 산정에 반영된다. 신포괄 평가에서는 상급종합병원 가산율(1.0%)에 환자경험평가 점수가 포함되며, 의료질평가 지원금에서도 별도 본지표로 전환돼 가중치 1.0%를 차지한다. 이는 환자경험평가가 단순 비교를 넘어 국가 재정지원과 병원 운영 전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지표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올해 조사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며, 성별·연령·진료분야를 반영한 표본 추출로 신뢰도를 높였다. 결과는 내년 공개되며 국민은 병원별 성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평가 결과 공개는 국민에게는 선택 기준, 병원은 환자 의견 수용을 통해 의료서비스 개선과 질 향상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환자경험평가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의료 질 향상의 수단"이라며 "병원과 의료진이 환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환자 중심 의료문화가 더욱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해서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환자경험평가 문항 및 내용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