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안심에서 세계 무대까지…HACCP 30년의 도약[식약처 사람들]

위반율 절반 줄고 구매 고려율 88%…영세·중소업체 까지 문턱 낮춰
인증업체 2만곳, 소비자 신뢰 두 배↑…스마트·글로벌 기준 도입

편집자주 ...올해 출범 11주년을 맞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 안심이 기준입니다'라는 슬로건 아래에 국제적 규제 기관으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이다. 산업 육성과 국민 안전,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내놓은 약속이 최근 수년 새 수백 건에 달한다. 이들이 내놓는 규제는 두 마리 토끼를 넘어 '최초, 혁신'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국민 질문에 답하고 있는 식약처를 <뉴스1>이 들여다본다.

지난해 11월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HACCP KOREA 2024'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식약처 제공) 2024.11.20/뉴스1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HACCP(해썹·안전관리인증기준)은 인증업체 2만 곳, 소비자 구매 고려율 88%라는 성과를 이루며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식품 안전망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스마트·글로벌 기준을 앞세워 세계 무대에서 식품안전 선도국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해썹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비행사 식품 안전을 위해 개발한 관리기법에서 출발했다. 생산 전 과정에서 위해물질 혼입이나 오염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1993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회원국에 해썹 도입을 권고하면서 세계 표준이 됐다. 국내에서는 1998년 축산물까지 확대 적용하며 제도 기반을 넓혔고, 대기업에서 시작해 점차 중소업체와 영세 사업장까지 확산했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발표한 '2023년도 농식품 국가인증제도 소비자 인지도 조사 결과'(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스마트 해썹 389개소 돌파…2027년 국제 동등성 확보 목표

30년간 정착한 해썹 제도는 국내 식품 산업 전반에 뿌리내리며 양적·질적 성과를 쌓아왔다. 지난해 기준 해썹 인증 업체는 1만 9739개소, 생산 비율은 90.6%에 달한다. 식품 부문은 1만 741개소, 축산물 부문은 8998개소가 인증을 받았다. 초기에는 식품·축산물 제조업에 한정됐지만 현재는 보관·운송·소분·공유주방 등 자율 업종까지 확대됐다. 2015년 즉시인증취소제를 도입한 이후 식품제조업소 법 위반율은 13%에서 7%로 낮아졌다.

소비자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HACCP 제품 구매를 고려한다는 응답은 2021년 70.8%에서 2023년 88.4%로 늘었고, 국내산 식품이 안전하다'는 응답도 같은 기간 34.2%에서 67.6%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외국인의 K-푸드 신뢰도 역시 2014년 44.8%에서 2023년 72.9%로 높아졌다.

이 같은 성과는 단순한 제도 운영을 넘어 식품 안전 문화를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식약처 관계자는 "HACCP이 단순한 인증을 넘어, 기업이 스스로 위생·품질 수준을 관리하고 소비자가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기반이 됐다"며 "제도 도입 이후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 해썹은 대표적인 성과다. 식약처는 2020년 세계 최초로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기반 관리체계는 중요관리점(CCP·Critical Control Point) 모니터링과 기록 관리를 자동화해 인적 오류를 줄였다. 센서 데이터를 활용한 실시간 안전관리와 위험 예측이 가능하게 했다.

2022년에는 빵류, 2023년에는 김치류, 지난해에는 과자류를 선도모델로 개발했다. 잔류 염소 자동 측정 등 15종의 식품 특화 센서를 보급했고, 현재 스마트 해썹 등록업체는 지난해 기준 약 389개소에 달한다. 정부는 재정 지원과 범용 프로그램 보급, 전문 인력 양성을 통해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중요관리점의 60% 이상을 스마트 HACCP으로 운영하면 심벌 사용, 정기 조사·평가 면제 등 우대 조치도 적용된다. 이러한 혜택은 특히 영세·중소업체의 도입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올해는 국제 기준을 반영한 '글로벌 해썹'이 새롭게 시행된다. 기존 위해요소(물리·생물·화학) 관리에 더해 식품 방어·사기 예방, 알레르기 유발물질 관리, 식품안전문화, 경영책임까지 포함해 총 152개 항목으로 고도화됐다.

글로벌 해썹은 Codex의 2023년 최신 지침과 미국 식품안전현대화법(FSMA·Food Safety Modernization Act), 국제식품안전협회(GFSI·Global Food Safety Initiative) 규격을 반영해 마련됐다. 제도 시행은 대기업과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자율 등록 방식으로 추진되며, 식약처는 이를 토대로 2027년까지 국제 동등성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원료별 위해요소 분석 정보를 200개까지 확대하고, 품목별 공정 분석을 강화해 맞춤형 관리기준을 마련한다. 김치·도시락 등 식중독 발생이 잦은 품목부터 단계적으로 CCP와 한계기준을 재검토하고, 업체가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원클릭 해썹 기준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업체는 기준서 작성과 개정이 쉬워지고 인증 유지 비용 부담도 줄어든다.

위해요소 관리시스템 프로토콜(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스마트·글로벌·로봇·환경…HACCP이 그리는 미래 지도

기후변화로 인한 병원성 미생물 증가, 세포배양육·대체단백질 등 신기술 식품 확산은 해썹의 새로운 과제로 꼽힌다. 이에 식약처는 'S.U.R.E.' 비전 아래 △스마트 기술(SMART) △제도 업그레이드(UPGRADE) △로봇 안전관리(ROBOT) △환경 대응(ENVIRONMENT)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병원성 미생물 확산, 황사·대기오염, 수질 문제 등 환경적 요인까지 아우르는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ROBOT'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 조리로봇 안전관리 인증이다. 국제기준(NSF·National Sanitation Foundation)에 따라 기기의 재질·구조·성능·위생성을 평가하는 제도로, 현재 초음파 튀김기, 양식·라면·우동·한식 자동화로봇 등 9종이 인증을 받았다. 인증 제품은 NSF·UL 솔루션즈(UL Solutions) 웹사이트에 등재돼 해외 수출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으며, 시범사업 결과를 반영해 2027년 관련 법제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국제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통해 베트남, 중남미 등지에 제도와 경험을 전수하며 식품안전관리 선도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2008년 아시아 국가에 해썹 제도를 전파한 데 이어, 최근에는 중남미와 중동 지역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했다. 글로벌 확산, 스마트 고도화, 국제 표준화 참여도 병행해 해썹 제도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식약처는 "해썹 30년의 경험 위에 디지털 혁신과 국제 조화를 더 해, 글로벌 식품 안전관리를 선도하는 다음 30년을 열겠다"며 "앞으로도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식품 안전 환경을 조성하고 K-푸드의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