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약 만들던 중국 맞아?"…글로벌 빅파마, 中신약 쓸어담는다
지난해 中 기술수출 186조 원…빅파마 도입 신약 40% 중국산
빠른 임상·낮은 비용 무기…ADC·이중항체·비만약서 韓 압박
- 임여익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값싼 복제약을 앞세우던 중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신약 시장의 핵심 공급처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항체약물접합체(ADC)와 이중항체, 비만치료제 등 차세대 신약 후보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바이오 기업으로 몰려들면서다.
특히 최근에는 신약 후보물질 하나를 사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10개가 넘는 후보물질을 한꺼번에 확보하는 대형 계약도 등장하고 있다. 신약 개발 속도와 비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이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6일 제기된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빅파마가 외부에서 도입한 신약 후보물질 가운데 중국 기업이 개발한 물질의 비중은 40%에 달했다. 2024년 30%에 못 미쳤던 비중이 1년 만에 크게 높아진 것이다.
계약 규모도 급증했다. 중국 기업이 개발한 치료제의 글로벌 기술도입 계약 규모는 2024년 450억 달러(약 61조 원)에서 지난해 1050억 달러(약 146조 원)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올해는 이미 920억 달러(약 125조 원)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세계에서 임상시험에 처음 진입한 신약 후보물질 가운데 중국 기업이 개발한 물질은 무려 46%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글로벌 빅파마의 대형 계약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은 지난중국 헝루이제약과 최대 최대 152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의 전략적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항암과 혈액질환, 면역질환 분야에서 총 13개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BMS는 중국 밖에서 헝루이가 개발한 후보물질의 독점 권리를 확보하고, 헝루이는 중국에서 BMS 후보물질 일부의 권리를 갖는다. 헝루이가 초기 임상을 맡아 신약의 가능성을 빠르게 확인한 뒤 BMS의 글로벌 개발 역량을 결합하는 구조다.
화이자도 같은 달 중국 이노벤트바이오로직스와 12개 항암 신약 후보물질을 대상으로 최대 105억 달러(약 14조 6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ADC와 다중항체 등이 포함됐으며, 이노벤트가 임상 1상까지 개발한 뒤 화이자가 글로벌 후기 임상을 주도할 예정이다.
빅파마가 중국으로 향하는 배경에는 빠른 개발 속도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이 있다. 중국은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초기 임상 진입까지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였다. 중국 기업이 주도하는 임상시험은 2009년 전 세계의 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2%까지 높아졌다.
특히 항암 분야의 경쟁력이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중국 기업의 글로벌 기술수출 가운데 항암 분야가 계약 건수 기준 49%를 차지했다. 면역질환이 22%, 비만을 포함한 심혈관·신장·대사질환 분야가 20%로 뒤를 이었다.
ADC와 이중항체 등 최근 빅파마가 관심을 두는 기술에서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후보물질을 만들어 임상 데이터를 확보한 것도 강점이다.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초기 단계부터 직접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것보다 중국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이 확인된 신약을 도입하는 것이 개발 기간과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비만치료제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비만·당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GLP-1을 비롯한 새로운 대사질환 후보물질을 찾고 있고 중국 기업들도 관련 파이프라인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중국 바이오 산업의 부상은 기술수출을 주요 성장 전략으로 삼아온 국내 바이오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빅파마가 선택할 수 있는 신약 후보물질이 늘면서 국내 기업들이 기술수출 과정에서 중국 기업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기업이 강점을 보여온 ADC와 이중항체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국내에서는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와 에이비엘바이오, 알테오젠 등 플랫폼 기술을 앞세운 바이오 기업들이 대형 기술수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글로벌 파트너를 둘러싼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다만 중국의 부상이 곧바로 한국 바이오의 경쟁력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도 올해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이어가고 있고, 글로벌 빅파마가 외부에서 신약을 도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자체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가 중국 기업의 신약 하나를 골라 사들이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중국 기업의 연구개발 역량 자체를 활용해 여러 후보물질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향으로 협력 방식이 바뀌고 있다"며 "중국과 개발 속도나 비용으로 정면 승부하기보다는 새로운 표적과 차별화된 플랫폼,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임상 전략 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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