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치료제 '스페라젠' 허가 제동…아스트로젠 "개발전략 재검토"
식약처 중앙약심 "절실함, 수요 알지만 근거 보강돼야"
유병률 급상승…근본적 치료제 시급, 식약처·업체 고심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세계 최초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근본적 치료제로 개발되던 '스페라젠시럽(성분명 L-세린·물질명 AST-001)의 국내 품목허가가 난항을 겪게 됐다. 자폐의 핵심 증상을 치료하는 약물이 전무한 상황에서 환자 가족들의 호소가 이어졌으나 과학적 근거가 보강돼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약의 개발사인 아스트로젠은 "현재 상황은 허가 무산이 아니라 새로운 허가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이라며 "과학적 근거와 미충족 의료수요를 바탕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신속한 허가 방안을 마련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1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는 스페라젠시럽 품목허가와 희귀의약품으로서 조건부허가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가 각각 부족하다고 판단하며 상정된 안건 전부에 대해 '타당하지 않음' 결론을 내렸다.
중앙약심은 보건복지부 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자문에 응해 의약품 등의 안전성과 유효성, 약사 정책을 전문적으로 심의하는 식약처 산하 자문 기구다. 신약 허가나 희귀의약품 도입 전 타당성 등을 자문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중앙약심 회의록을 보면 위원들은 사후분석과 통합분석의 '통계학적 신뢰성'이 부재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아스트로젠 측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통계분석' 방식으로 유효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스페라젠 시럽은 임상3상 시험의 목적인 일차 유효성 평가(12주 시점, 이중눈가림)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으나 아스트로젠은 일부 연령(2~5세) 데이터를 따로 떼어내 사후 통합분석을 거쳐 유효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위원들은 "의약품 허가를 위해서는 사전에 계획된 통계분석에 의한 결과만 확증적 증거로 인정된다"면서 "규제적 측면에서는 유효성 입증에 실패한 임상시험이며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중앙약심은 평가지표의 객관성 부족과 영유아 '자연 성장' 변수도 지적했다. 아스트로젠은 자폐스펙트럼장애 핵심증상 개선이 어려워지자, 일부 연령(2~5세)의 운동기술 영역 개선으로 적응증(의약품의 효능·효과) 범위를 좁혀 허가를 신청했다.
이를 두고 위원들은 "만 2~5세 연령대는 뇌와 신체의 가소성이 매우 높아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아도 외부 자극 등에 의해 운동기술이 크게 발달할 수 있는 시기"라고 지적했다. 운동기능 개선을 주장하려면 객관적 지표에 대한 확증 임상시험을 추가 실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약사법에 따라 희귀질환이나 팬데믹 등 긴급한 상황에 한해 임상3상 결과를 추후 제출하는 조건으로 허가하는 '조건부 허가'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중앙약심은 표결을 거쳐 8명 중 7명이 스페라젠시럽이 희귀의약품 조건부 허가 대상에 부합하지 않다고 의결했다.
환자가 극히 적어 일반적 임상 설계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으며 데이터의 통계적 타당성부터 인정하기 어려워 제한적으로라도 유효성을 논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다. 위원들은 한목소리로 "유효성 입증을 위한 추가적인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현장에는 아스트로젠 관계자들이 의견을 진술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으나, 위원들은 불필요하다며 전원 일치로 청취를 생략했다. 식약처도 환아 부모들의 허가 요구와 미충족 의료수요를 인지해 중앙약심을 열었으나 과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담보해야 하는 위원들 조언을 듣게 됐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어려움과 반복적, 상동적 행동 양상의 특징을 보이는 신경발달장애다. 과거에는 희귀질환으로 여겨졌지만 진단 인식 향상 등이 맞물려 세계적으로 유병률이 급상승했다.
스페라젠은 소아의 신경망이 지나치게 발달하는 것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물질이다. 뇌 혈액장벽(BBB)를 통과해 도파민 신호를 정상화하고 뇌 내 흥분·억제 균형을 회복시키는 기전으로 설계됐다.
아스트로젠은 지난 9일 입장문을 통해 "현재 상황은 허가 무산이 아니라 새로운 허가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이라며 "중앙약심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식약처 역시 환자들의 미충족 의료수요와 치료 접근성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식약처와 협의하며 다양한 허가 전략과 개발 방향을 논의하고, 환자들에게 가능한 한 빠르게 치료 기회를 제공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과학적 근거와 미충족 의료수요를 바탕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신속한 허가 방안을 마련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스트로젠은 경북대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교수였던 황수경 전문의가 2017년 세운 바이오기업이다. 저분자 화합물을 기반으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비롯한 난치성 신경 발달·퇴행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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